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우 답답할 때가 많다. 답답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답답할 때가 많다. 뉴스를 통해서 보고 듣게 되는 세상 소식이 답답하고, 직장이나 가정에서 겪는 일들이 답답할 때가 있다. 답답한 느낌이 들 때마다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 있는 벤치를 찾아 눈을 감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 본다. 일단 답답한 사건이나 소식을 눈으로 보지 않으면, 어느 정도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그래도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수영할 때 사용하는 귀마개를 하고 앉아 있으면 조용해진다. 귀마개를 하면, 지하철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안내 방송 소리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들린다. 세상의 복잡하고 답답한 일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자주 눈을 감는 시간을 갖고 귀마개를 하면 어느 정도 문명세계가 일으키는 시각과 청각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사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우리의 눈과 귀가 집중하는 세상이 절대적인 유일한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된다. 오감으로는 인식할 수 없지만, 이 우주에는 무한한 현실 세계가 숨겨져 있다. 원래 인간의 의식은 모든 현실을 인식할 수 있지만, 오감이라는 제한된 필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현실 말고는 다른 현실들을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 우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화나 라디오의 전파가 모든 공간 속에 있지만, 눈과 귀로는 직접 알 수 없다. 개들은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는다. 폭풍우가 다가오면, 동물들은 이를 감지하고 미리 숨는다. 모기나 곤충들은 수 키로 떨어져 있는 곳의 다른 곤충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사람의 시각과 청각은 매우 제한적이다.
오감을 초월하는 현실 세계란 우주 전체에서 진동하고 있는 모든 에너지의 흐름을 말한다. 인간은 전체 우주적인 현실의 약 3% 미만만을 인지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내는 굉음을 듣지 못한다. 인간이 오감을 초월하면, 나무나 꽃의 의식을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느끼고, 나아가 신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 오감에 집중하고 오감이 유일하다고 믿기 때문에, 분명히 존재하는 다른 진동이나 에너지의 실재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우리의 눈과 귀에 잡히는 답답한 사람이나 답답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전체 우주적인 현실의 전부가 아니다. 인간은 생각의 변화를 통해서 지금까지 몰랐던 다른 현실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답답한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을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런 현실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답답한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른 장점을 끌어내서 미리 느껴볼 수 있다면, 그러한 현실이 바로 일어날 수도 있다. 정말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도 같은 구조이다. 뒤집어 보면 바로 다른 현실이 숨겨져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한 가지 현실에만 목을 매달고,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한다. 이 세상에 고정된 현실은 아무것도 없고, 언제나 우리의 생각에 따라서 현실은 변한다. 마치 밀가루 반죽이나 찰흙을 통해서 수많은 다른 빵이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것과도 같다. 진짜 현실은 바람과도 같다. 수많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답답한 사람에게 숨겨진 장점과 신성을 보아야 한다. 눈과 귀로만 보면 안 된다.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만 그러한 세계가 열린다. 너무 한 가지 현실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마음의 문이 닫혀 있다는 뜻이다. 마음의 문이 열리면, 나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상자 밖으로 걸어 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