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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Jun 30. 2024

삼위일체로 구성된 나를 이해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매일 많은 생각을 한다. 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생각들은 무언가를 보거나 들으면 그냥 떠오르는 것이 많다. 도대체 누가 내 속에서 생각을 하는 주체인지에 대해 철학 또는 심리학에서 연구가 있지만, 아직도 인간의 의식이나 생각에 대한 명확한 구조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자동차에 빗대어 보자면, 나라는 운전사가 몸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즉 자동차라는 객체를 운전사라는 주체가 작동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을 누가 운전하는지 주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의식, 잠재의식, 마음, 정신, 생각, 에고, 자아 등 사람을 움직이는 주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고, 표현들 상호 간의 구별도 어렵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애매함 때문에 사람이 정신적인 갈등을 겪고, 자신이 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를 때도 있다. 흔히 내가 내면의 또 다른 나와 싸우고 있다는 말이나, 나는 이러한 나 자신과 더 이상 살 수 없어, 또는 나는 나 자신을 모르겠어라는 말이 있다. 이 경우에 나와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 애매모호하다.

혹자는 이성이 감정과 싸운다고도 한다. 사람은 떠오르는 생각을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선택하는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이다. 이쯤에서 복잡한 개념들을 피하고, 단순하게 정리해 본다. 몸이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생각을 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존재가 나라면, 그러한 나는 누구인가를 알면 된다. 나라는 존재는 내면의 신성, 순수의식, 에고라는 삼위일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원래 영적인 존재이자 보이지 않는 우주적인 신이 보이는 물질세계를 경험하고자 인간을 포함해서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한다. 따라서 온 세상의 피조물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고, 인간에게도 내면의 신성이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 하늘의 천국이  속에 있다"라는 말이 대표적으로 이 점을 암시한다. 에고는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물질세계를 경험하면서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순수의식이란 내면의 신성과 에고가 몸 안에서 작동하는 현상을 알아차리고 중립적으로 관찰하는 존재이다.

나라는 주체를 이런 삼위일체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평소에 있다고 느끼는 개별적인 이름을 가진 나라는 존재는 없다. 대신 우주적인 신성이 어쩌다 내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있고, 순수의식이라는 틀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관조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관조하는 수단인 순수의식이 신성을 느끼지 못하면, 단지 에고만의 경험을 느끼게 된다. 이 경우에는 순수의식이 에고와 동일시되어 마치 에고가 나의 전부라고 느껴진다. 신비주의자들은 순수의식을 진아 또는 본래의 나라고 보며, 에고가 나라고 여겼던 상태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신성의 측면을 모른 채, 순수의식이 에고와 분리되면, 객체인 몸을 작동시킬 프로그램을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그럴 경우에는 무념무상, 무아, 무위의 경지에 이를지는 모르지만, 21세기라는 복잡한 시대의 도시에서 살기 어렵다.

그래서 내면의 신성이 나의 핵심적인 주체로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원래 우주적인 신의 의도대로 신이 내 몸을 통로로 활용해서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라는 존재는 내면의 신성이 깨어나서 에고의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세상을 맛보는 과정이고, 이 모든 현상이 순수의식이라는 관찰의 틀을 통해 느껴진다. 이런 이해에 도달하면, 더 이상 에고와 같은 개별적인 나란 현상은 사라진다. 대신, 이제부터는 내 속에 깃든 내면의 신성이 에고라는 몸의 작동 프로그램을 고쳐가면서 세상을 경험해 보는 과정을 신의 자기인식 수단인 순수의식이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에고의 무용담인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필요 없게 된다. 그동안 세상의 경험 프로그램인 에고를 나라고 여겨왔기에 많은 고통과 혼란이 발생하였다.

내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경험을 신의 또 다른 측면인 순수의식이 동시에 맛보고 있다고 깨닫게 되면, 개별적인 나라는 개념이 극복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몸이라는 집의 관리인인 에고가 주인인 신성이 휴가 간 사이에 집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집주인인 신성이 다시 몸에 돌아오면, 멋대로 날뛰던 관리인인 에고를 다시 잘 다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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