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등하다.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재산이나 지위와 같은 개인적인 성취 면에서는 모두가 똑같을 수 없다. 평등하지 않은 분야는 사실 신기루와 같은 것들이다.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소멸할 것들이다. 신의 조각인 인간 존재의 본질과는 무관한 물질이나 지위에 집착하면 할수록, 인간 존재의 의미와 영원성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존엄성을 지켜 주고, 인간이 영원한 본성의 일부라는 점을 알려 주는 것들이 평등하다. 바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언젠가는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 평등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성의 상징인 이 두 가지 진실을 회피하려고 한다. 죽음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단지 외면만을 보고 무서워서 회피하려는 태도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진실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회피하려는 자세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고도의 상업주의와 감각적인 문화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아파트의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오직 나밖에 모르며, 내 물질에만 집중한다.
사랑이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내 이익과 나의 물질만을 생각한다면, 나에게는 사랑의 불씨가 이미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리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하고, 구중궁궐 같은 집에서 살아도 마음속에 사랑의 속성이 꺼졌다면 그것이 바로 신기루를 쫓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라고 숭배하는 존재는 사실 사랑의 화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닮게 인간을 창조했다. 신의 이미지란 할아버지와 같은 외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속성의 이미지를 말한다. 오직 사랑만이 나와 남을 용서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준다. 사랑은 면역력을 회복시켜 모든 질병마저 치유해 준다. 그리고 사랑만이 육체의 소멸이라는 외면적 죽음도 극복하게 해 준다. 사랑은 인간에게 만병통치약이다. 그만큼 사랑은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아쉽게도 물질만을 추구하고 인간을 전체 사회의 부품처럼 여기는 상업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다. 신발의 끈이 끊어져서 발을 보호하지 못하면 더 이상 신발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포기하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 존재의 본질에서는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서 오늘 무엇을 사랑할까 누구를 사랑할까 고민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사랑에너지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뿌리 깊게 지배하고 있는 남녀 간 혐오, 세대 간 갈등, 비혼주의와 저출생률은 모두 한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전 이후 극도로 가난했던 한국사회가 지난 50년간 단지 급격한 경제 성장 일변도의 변화를 겪으면서 자신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과 인간은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결과이다.
사람은 하루에 세끼 이상 먹을 수 없다. 죽을 때 커다란 아파트와 금고를 가지고 갈 수도 없다. 사랑해 본 기억이 없으면 늙을 때 외롭고 후회가 된다. 사랑한다는 것이 힘든 일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아껴주면 된다. 운전할 때 다른차에게 양보해주고,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면 된다. 수영을 배우듯이 하나씩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늘려가면, 사랑하는 마음이 커진다. 이기적인 내가 어느덧 변하게 된다. 원수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은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법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급격하게 변한다. 살기가 편해지고, 사람들을 만나면 기쁨이 넘치게 된다. 사랑을 외면하고, 다른 부분에서 아무리 애써도 남는 건 결국 외로움과 병든 몸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질병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살아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영원한 신적인 존재에 대한 회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성적인 사랑이나 내 가족에 대한 사랑은 우주적인 비밀인 사랑이라는 속성의 극히 일부이다. 나의 사랑의 대상을 넓혀 가는 것만이 삶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만들고, 물질에 대한 집착을 줄여 주고, 영원성에 대한 포용의 마음을 부어준다. 거듭난다라는 말이나 살아서 죽는다는 말도 기존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사랑의 본질에 눈을 뜨라는 말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