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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Oct 09. 2024

고장난 에고를 바라보는 존재

언제부터인지 마음속 심연 깊은 곳에서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길거리의 자동차와 인파, 공사 소리뿐만 아니라, 내면의 생각이 일으키는 말랑말랑한 소음 때문에 마음속 심연의 소리가 구분되어 들리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겪게 되는 이러저러한 아픈 일들이 조금씩 내면의 소리에 무감각했던 신경을 일깨워준 것 같다. 어려서 상상하지 못했던 어른 세계의 황량함이 가슴을 저민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사람들이, 그것도 노년기에 방문하는 잔인한 질병과 고독함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불필요하게 서로 물어뜯고 미워하며 살아가는지. 어쩌면 매우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인간 세상의 혼돈이 내면의 세계로 인도하는 관문인 것 같다. 그 문을 살아서 건너야만, 소위 에고와 분리되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 에고의 세계는 구조적으로 제한적이고 조건화되어 있다. 이 세상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구분하고, 시간을 할 일과 무료한 시간으로 나누어 산다. 에고는 무엇엔가 중독되어 살아야 할 운명이다. 가장 큰 중독은 생각에의 중독이다.

이 존재는 끝없는 생각, 기억, 감정, 욕구의 샘으로 이루어진 에고라는 신공지능이 장착된 인간 로봇이 무슨 짓을 하는지 거리를 두고 보게 된다. 이 존재는 형체도 없고, 온 세상에 편재해 있다. 나라고 생각되는 에고뿐만 아니라, 다른 몸에 내장된 에고도 볼 수 있다. 어떤 선악의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에고가 움직이는 모든 곳에 마치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이 존재가 동행한다. 이 존재는 에고가 느끼는 삶과 죽음이라는 위협을 모른다. 오직 내 팔과 다리를 거리를 두고 쳐다보듯이, 마치 클라우드 환경에서 에고를 뇌속에 들어있는 USB로 바라보아야만 에고에서 멀어진다. 중요한 점은 마음이 에고에게서 떠나면, 에고와 분리되는 이 존재가 느껴지면 질수록, 지금까지의 에고가 나라고 여겨졌던 정체성이 희미해진다. 에고도 더 이상 과거처럼 이기적이지 않고, 집착에서 벗어나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다른 에고 로봇을 대할 때, 그냥 인정해 준다. 에고들이 살아가는 태양계 맨 밖에는 카이퍼 벨트라는 거대한 얼음운석들이 있는 지역이 있다. 에고에서 분리된 존재는 이런 우주의 얼음을 느끼고 에고의 드라마를 보면서 달아오른 열기를 녹인다. "주여,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 신성의 기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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