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무엇을 먹거나 입건 상관없이,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대해 대응하는 기준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그런 기준에 따라 이렇게 해야 한다 또는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나의 생각과 언행을 순간적으로 지배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보면 미소를 짓지만, 반대로 또 다른 사람을 보면 인상을 찌푸린다. 새로운 곳에 가면, 주변을 좀 더 집중해서 관찰하지만, 늘 가는 곳에서는 긴장감이 줄어든다.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매 장면마다 배우가 행할 말과 행동이 각본에 따라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영화의 각본과 같은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다만, 우리의 각본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리 정해진 기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움직인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사람마다 옷을 입는 방식이나 헤어스타일이 정해져 있다. 만약 자신의 머리를 평소와 조금만 다르게 관리하면 스스로 이상하게 느낀다. 옷을 고를 때도 수많은 옷 중에서 반드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다. 어떤 것이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것은 선택하는 대상이 이미 정해진 마음속 기준에 맞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 중에서 친구나 애인,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자신도 모르는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 선택의 기준이나 언행의 기준을 가치관 또는 신념체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과 신념체계는 성장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교육, 경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세뇌와 심지어 부모의 유전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마치 어린 시절에 수용한 종교를 평생 유지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의식적으로 고치기가 어려운,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창문이다. 어떻게 보면, 장기간에 걸쳐서 인간에게 주입된 가치관과 신념은 컴퓨터에심어진 프로그램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날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거에 나에게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과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늘 답답하게 보인다. 나의 남편이나 아내는 오늘 새로운 가능성을 품은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나의 가치관과 신념체계는 과거의 남편과 아내의 이미지로 만들어져 있고, 오늘도 나는 과거의 잣대로 새로운 사람을 재단한다. 인간이 성장하거나 경험을 통해 형성하는 가치관이나 판단기준은 매번 자신에게 다가오는 상황이 그에 맞기를 기대한다. 자유로운 생명체인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고정 패턴을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한번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 싫어하게 되면, 영원히 그 사람과의 관계는 아웃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사소한 점 때문에 그 사람이 품고 있는 막대한 가능성은 무시되고 아예 관계마저 단절된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매일매일 잘못 살아가고 있다. 매일매일 주변 사람들을 미워하고, 오해하고, 자신의 고정관념과 고집을 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왜 이런 가치관이나 신념체계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다. 왜 내가 반바지보다는 긴 바지를 좋아하는지, 왜 나는 아내가 나를 왕처럼 대해 줘야만 좋아하는지, 왜 나는 나의 남편이 항상 나에게 져주어야만 좋아하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나의 그런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답답해하고 화를 낼 뿐이다. 신비한 점은 내 가족이 나의 가치관에 맞지 않을 때는 화를 내지만, 나의 상사나 또는 나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이 비슷한 행동을 할 때는 참고 비굴하게 칭찬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는 친절한 성품을 보이다가도, 가족이나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어떻든 중요한 점은 우리의 언행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고정된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자각하고, 필요하면 그로부터 벗어나야만, 자유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가 인생의 각본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맛볼 수 있다. 그동안 노랑색 셔츠를 입지 못했다면, 오늘 한번 시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