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기서 왜 나와요?
이제 리시케쉬에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낀다. 방 앞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첫 페이지를 넘겼던 오쇼의 책도 거의 마지막 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5월의 중반을 넘긴 리시케쉬에도 한 여름의 무더위가 점점 가까워온다. 땅 위에서 요가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조금 더 시원한 북쪽 지역으로 떠나고, 그동안 흰 눈 속에 꽁꽁 숨겨졌던 히말라야의 산 길들도 조금씩 순례자들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리시케쉬에서의 여정을 마치면 나는 달라이 라마가 계신다는 맥그로드 간즈로 올라갈 것이고, 유카는 힌두교의 성지인 히말라야 산속, 강고트리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언제쯤 떠날 거라고는 서로에게 정확히 일러둔 적은 없지만 게스트 하우스 사람들 역시 조만간 헤어질 것이라는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함께 따뜻한 모래밭에 누워 물놀이를 하고 아무 말 없이 명상을 하면서도 항상 옆에 누군가는 있다는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도 지나간 달력은 넘겨야 하는 것처럼 이제 곳 다가올 헤어짐의 시간을 앞두고 오늘 저녁엔 유카와 든든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처음 함께 갔던 레스토랑. 부침개같이 적당한 크기의 피자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마을을 감싸 안은 만트라 음악과 갠지스강과 락시만 줄라를 배경으로 물안개가 살짝 피어오른 저녁노을과 함께 피자 한 조각, 림카 한 모금을 마신다.
그렇게 우리들의 아늑한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열 개가 족히 넘는 테이블에 우리만 달랑 앉아 있던 조용한 식당에 갑자기 서양 손님들이 몰려왔다. 어느새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찼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인도 사람들이 아닌 외국인 속에만 외국인이 된 것은 또 오랜만이었다.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지만 사실 인도에 있으면서 서양에서 온 듯한 여행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달갑지는 않았었다. 물론 리시케쉬에 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여행지를 오고 가는 버스나 기차에서 마주쳤던 그들의 모습은 얼핏 보면 거만하고 지나치게 예민한 것 같기도 했다. 어딜 가나 사진을 함께 찍자고 제안하거나 무작정 사진기를 들이밀고 찍는 인도 사람들도 예의가 없었지만, 그런 행동에 처음부터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높여 짜증 내는 모양새도 좋게 보이진 않은 게 사실이었다.
식사도 어느 정도 마쳤고 한낮의 타들어가던 태양도 이제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어디선가 ‘안녕하세요’라는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누가...?’
본능적으로 한국인만 반응할 수 있는 인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테이블 쪽으로 돌렸다. 8개 정도 테이블이 가득 찬 곳에서 그중 한 테이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테이블에 앉은 3명 중 한 분이 동양인이었다.
“우와. 한국분이세요? 안녕하세요!”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몰래 큰 소리로 인사를 했는데 갑자기 8개의 테이블에 앉은 모든 서양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히 웃으며 한국말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갑고 무뚝뚝한 서양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해맑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갑작스레 예상치도 못한 외국인의 안녕하세요 인사에 나는 깜짝 놀라 모두에게 고개를 꾸뻑이며 안녕하세요 답례를 했고 사람들의 입가엔 미소가 퍼졌다.
엉겁결에 식당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곤 처음 나에게 인사를 건네었던 한국인 분의 테이블로 갔다. 마침 테이블에는 한 자리가 비어있었고 유카는 잠깐 인터넷 카페에 가서 메일을 확인하겠다고 하곤 내가 다른 분들과 편히 이야기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어떻게 다들 한국말 인사를 할 줄 알아요?”
휘둥그런 눈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한국분에게 물었다. 이 상황이 그녀 역시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모두들 제일행이고 제가 한국사람이라 그 정도는 알죠. 제가 알려줬으니까요. 시간 괜찮으면 잠깐 앉아서 이야기나 해요.”
리시케쉬에 와서 한국 사람은 처음 만났다. 북한 요가 언니 빼고는 거의 일본 사람들과 게스트 하우스의 친구들, 인도 사람들과만 지내다가 오랜만에 한국분을 만났으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당연하죠. 고마워요. 우와. 리시케쉬에서 이렇게 많은 서양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건 처음 봐서 못 알아봤어요.
한국분이 계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요. 다들 어떤 관계인 거예요?”
“모두들 같이 활동 나온 친구들이에요. 여기 제 옆에 계신 분이 우리 팀 팀장님이세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외국인 두 분께 꾸벅 안녕하세요 하다가 헬로우도 덧붙여 인사드렸다.
“그런데 제가 한국 사람인지는 어떻게 알고 안녕하세요 하신 거예요? 사실 옆에 있던 친구는 일본 친구였는데.”
외국에서 동양인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사람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아님 중국사람인지 100% 확신할 수 있는 케이스는 흔치 않았다. 물론 3개국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 세나라 사람들을 구별하는 능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지만 말이다.
내 질문에 옆에 앉아 계시던 팀장님이라는 서양인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보며 찡긋 웃었다. 나는 분명 오늘 처음 뵌 그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있거든요.”
“네?? 언제요? 어디서요? 저는 오늘 처음 뵀는데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도대체 나를 어디서 보셨을까...
“월요일인가 화요일 정도 오후에 락시 만줄라 근처 카페에서 다른 동양인 여성분들이랑 차마셨죠?”
점쟁이가 내 앞에 앉아 계신 건지.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나의 일상을 알 수 있는 건지. 또 한 번 깜짝 놀라서 그걸 어찌 아셨냐고, 맞다고 당황하듯 말씀드리니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키득키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