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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ug 25. 2021

말하는 밥솥과 외국인 남편

독일어와 한국어 사이




한국에서는 독일에 대한 특정 이미지가 몇몇 있는 듯하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나라 중 하나라는 것. 한국에서 유명한 독일 제품이라고 한국에서는 가격이 이렇게 비싼데 독일에서는 가격이 얼마인지 한번 살펴봐주라는 부탁을 종종 받을 때면, 독일에 살고 있는 나는 그때서야 독일 이름을 가진 듯한 브랜드들의 이름을 처음 들어보게 된다. 그렇게 찾아보는 브랜드들의 이름들은 정작 독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멘스나 밀레, 보쉬 등은 이곳에서도 유명하지만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독일' 제품들의 많은 경우 정작 독일에서는 알려지지 않거나 어쩌면 한국에서 독일 제품인 것처럼 독일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그만큼 가전제품에 대한 독일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독일 사람들도 우리나라 가전제품 중에 신기하게 쳐다보는 물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밥솥이다. 원래 나는 해외에 나가면 보통 현지 음식이나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하는 음식들을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여행과 이민은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는데 바로 밥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찾게되는 물건  하나가 바로 밥솥이 되었. 지금까지의 해외생활 중  없이, 김치 없이 살았던 가장  기간은 6개월이었다. 15년여 , 남아공에 살았을 , 밥솥은 커녕 내가 원하는 쫄깃쫄깃한 밥을 찾기도 어려웠던 그곳에서 나는 그냥    없이 살아보기로 했고 어느 정도 통했다. 그러나  시간이 6개월보다 조금  길었다면 장담할  없었을 것이라.


그 이후로 1년 이상 해외에 장기체류하는 경우, 나는 외부에서 밥을 사 먹는 가격보다 밥솥을 하나 사서 직접 해 먹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밥솥을 하나 사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십 년 전만 해도 분명 해외에서 괜찮은 밥솥을 사는 것이 보물 찾기처럼 불가능하진 않으나 찾기 위해 제법 노력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지금은 꽤나 수월해진 것 같다. 굳이 한국에서 공수해 오지 않아도 해외에도 생각보다 괜찮은 밥솥이 있었고, 그래도 여전히 해외 브랜드의 밥솥이 성에 차지 않다면 이제는 해외 어딜 가든 그곳에 거주하는 한인 커뮤니티들이 제법 있어서 중고이긴 해도 한국산 밥솥을 살 수 있는 경우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더 투자를 하기로 했다. 결혼을 했고, 이제는 커다란 결정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사는 사람과 이곳에서 제법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신혼부부들이 혼수를 장만할 때 꼭 마련한다는 제대로 된 압력밥솥을 공수해오기로 했다. 밥솥 하면 떠오르는 그 밥솥 브랜드의 최신 제품으로 해외로 시집가는 우리 엄마가 엄마가 밥을 해주지 못하는 대신 이 밥솥이 엄마의 밥맛을 그대로 전달해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선물해주셨다. 추가 비용을 더해서 기내 화물로 들여와 한국의 공항에서부터 베를린 공항까지 품 안에 꼭 안고 함께 날아온 하얀 밥솥이었다.


심플한 디자인에 품 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작은 밥솥이라 생각했던 남편은 밥솥을 처음 들어본 날, 이렇게 작은 밥솥이 왜 이리 무거운지 놀라워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티타늄과 세라믹과 스테인리스 등 나도 잘 모르지만 엄청 좋은, 특별한 스톤으로 만들어져서 무겁다고 했더니 남편은 신기해했다. 외국에도 밥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옛날에 플라스틱 본체에 내솥은 스프링이 달려서 튀어나오는 얇은 스테인리스 밥솥이 여기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밥솥을 사용하면 내가 원하는 엄마의 밥맛, 할머니네 논에서 갓 수확한 가을날 햇쌀을 막 해 먹는 윤기 가득한 찰진 밥맛은 느낄 수 없었다. 여행이라면 한 달, 그래 큰 맘먹고 6개월 정도는 날아다니는 밥만 먹고 버틸 수 있겠지만 평생 살아야 하는 거라면 이제는 찰진 밥을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밥솥은 디자인이 예뻐서인지 독일 주방에 가져다 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지도 않았고, 색깔도 지금의 우리 집 주방과 어울렸다. 크기도 작고 밥솥은 밥만 하는 줄 알았던 남편은 밥솥의 제법 높은 가격을 처음 듣고 깜짝 놀랐다. 크기만 따지만 거의 4배 혹은 6배나 작은 밥솥 가격이 독일의 웬만한 브랜드 제품의 오븐 가격과 맞먹는다며 도대체 이 밥솥이 왜 이리 비싼지 궁금해했다. 무언가 설명을 하려 했지만 아직 빵과 고기의 세계밖에 모르는 외국인에게 밥의 세계가 얼마나 광범위하고 심오한지, 밥솥의 차이가 얼마나 밥맛을 좌우하는지는 앞으로 살아보며 직접 맛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처음 밥솥을 주방에 놓고 이곳저곳 청소를 하다가 식초를 살짝 섞은 물을 담아 자체 세척을 하려 전기코드를 끼워 넣는 순간 갑자기 주방 가득 울리는 뻐꾸기 소리. 남편은 밥솥에 이름이 있는 것을 신기해했고, 왜 그 이름이 뻐꾸기 혹은 비둘기 우는 이름인지 궁금해했었는데 주방 가득 새소리가 잠시 울리는 것을 듣고 놀라워했다.


"우와. 밥솥에서 소리가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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