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바리쉬, 코머라드, 그리고 동지
남편과 한국 드라마 몇 편을 보고 난 뒤, 그가 어떤 스타일의 드라마를 좋아할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추천하는데 오히려 조금은 더 조심스럽거나 깐깐해진 면이 생겼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또래에,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던 한독 커플인 친구네가 요새 푸욱 빠져있다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사랑의 불시착'. 내 친구의 독일 남편은 심지어 보면서 울었다고 했다. 사랑의 불시착에 울만한 장면이 있었던가... 함께 있는데 둘이서 어찌나 재밌고 감동적으로 봤다고 하는지, 친구네가 떠나고 나서 우리도 사랑의 불시착을 틀어보았다.
남편이 한국 드라마를 볼 때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첫 몇 화를 넘기는 일이었다. 남녀 주인공의 배경과 사연들이 짧은 시간 안에 설명돼야 하고, 또 그 사연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돼야 하는데, 심지어 사람들의 관심까지 사로잡아야 하는 이 모든 작업이 드라마의 첫 1, 2화에 달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 첫 몇화에는 보통 조금은 과하고, 강렬하며, 억지스러운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곤 했는데 남편은 그걸 보통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런데, 사랑의 불시착은 한 부분에 있어 남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북한이라는 소재. 남편은 신기하게도 소비엔트 연방이 무너지기 바로 2년 전에 소련연방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나는 러시아어를 몰라도 중고등학교 세계사나 근현대사 시간에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혁, 개방이라는 단어를 들어만 봤는데 남편은 그 시절,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태어나는 시기의 모습이 그의 어린 시절 희미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아이였다. 우리는 세계사적으로 보면 신기하게 우리의 기억 속엔 냉전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지만 냉전이 끝날 무렵 우리의 생이 시작된 아이들이었다.
사실 외국에 나가면, 유럽이나 미국만이 아니라 저 머나먼 아프리카의 작은 도시에 가도 South Korea는 몰라도 North Korea의 김씨 성을 가진 리더들의 이름까지 아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에 오히려 놀라게 된다. 어디에서 만나든 그들은 보통 북한을 약간 국제사회의 돌+아이를 칭하듯 장난식으로 묻거나, 북한 사람들의 인권 문제에 문제의식을 많이 갖는 뭔가 심각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어린 시절, 소련연방이나 러시아 초기, 사회주의 국가들의 모습에서 나타나던 모습이 사랑의 불시착, 북한 사람들에게서 겹치는 게 있으면 신기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