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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Jul 25. 2022

한국말의 ‘편하게’는 어떻게 통역하나요

외국인 남편의 눈치 문화 배우기

국제커플들 사이에 정말로 문화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람마다 혹은 커플마다 여러 논쟁들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문화라는 분야를 잠시나마 전공하고 나서부터는 예전에는 쉽게 ‘문화 차이’라고 말하던 것들도 지금은 쉽사리 단정 짓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남편에게 있어 문화 차이라고 할만한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말 중에 “편하게 있어요” 혹은 “편하게 지내”의 “편하게”이다.


편하게 지내라는 말의 뉘앙스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그다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외국인이고, 또 외국인 중에서도 나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남편이다 보니 이 “편하게 있어”라는 말의 “편하게”가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경험하게 된다.


남편이 아직 남자 친구일 때, 그가 처음 우리 집을 방문하던 날 나의 부모님은 무척 긴장하셨다. 내가 남자 친구라는 존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온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 남자 친구가 외국인인 것에 더 부담이 크셨을 것이다.


순수 한국어만 하시는 부모님은 남자 친구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자, 반갑다며 인사하시고 이 말을 하셨다.  


“집처럼 편하게 지내요”


영어에도 한국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Feel at home”이라는 말이 있었고, 다행히 나는 우리 부모님이 의미하신 말과 내 통역의 의미가 나름 비슷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첫 만남을 나눈 뒤, 엄마의 정성이 가득한 저녁식사를 함께 먹었고, 나는 잠시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문을 열고 눈앞에 펼쳐진 거실 풍경에 나는 순간 내가 우리 집이 아니라 남자 친구 집에 왔나 착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착각을 하기에 우리 집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아파트에 돌소파를 가진 집이라 이건 분명 독일이 아닌 한국의 우리 집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그의 집인가 순간 착각했던 이유는 그가 소파 앞에 옆으로 누눠 한쪽 팔을  쪽에 괴고 우리 아빠와 함께 무한도전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파에는 우리 아빠가 오른쪽 팔을  비스듬히 누워 계시고,  소파 앞에, 그러니까 우리 아빠 앞에 떡하니 아빠와 똑같이 붙여  자세 그대로 티브이를 보고 있는  파란 눈의 남자 친구.


처음 한국을 방문해서, 느닷없이 우리 부모님까지 만나게 된 남자 친구가 혹시나 너무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었던 내 걱정은 나만의 것이었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다 저렇지도 않을 텐데, 오히려 처음부터 허물없이 능청맞게 우리 부모님과 지내는 남자 친구가 다행이기도 했다.


하도 자연스럽게 정말 ‘내 집’처럼 지내는 남자 친구에게 나중에 물었었다. 진짜로 편해서 그렇게 누워 있었는지. 보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사실은 속으로는 무척 떨렸었다고 말해주는 그였다. 사실은 떨리면서도 겉으론 태연한 척했구나 싶어 이 아이도 똑같네 하고 넘어갔던 해프닝이었다.


그렇게 처음 우리 집에 남자 친구로 방문했던 그가 두 번째 우리 집을 찾았을 때, 그는 남자 친구가 아닌 나의 남편으로 지내게 되었다. 결혼식을 하러 다시 한국에 온 그는 미리 만난 내 친척들 덕분에 능청맞게 두 번째 본 우리 엄마 아빠 내 동생에게 바로 ‘장머니’, ‘장인어른’, 그리고 ‘장동생’이라 불렀다.


그리고 결혼식 바로 하루 전, 결혼식 주례를 봐주실 목사님을 찾아뵀다. 교회에서 일하시는 엄마와, 엄마와 함께 일하시는 권사님, 그리고 목사님이 나와 남편을 반겨주셨다. 어릴 적부터 나를 봐오신 권사님이 드디어 내가 결혼할 사람을 데려왔다고, 이렇게 예쁘고 잘생긴 신랑을 데려왔다고 우리를 반겨주셨고, 목사님과 권사님 모두 이렇게 말씀하셨다.


“편하게 앉아요”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편하게’라는 말을 남편에게 통역을 하고 의자에 앉은 다음, 목사님께서 결혼하는 커플들에게 해주고 싶은 덕담을 마저 통역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끼는 사람이고, 또 일반적인 대화보다는 결혼 전 나누는 덕담이다 보니 목사님의 문장도 평소보다 길었고, 그걸 통역하다 보니 시간이 더 더디 가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나는 통역하기 위해 남편과 목사님, 그리고 중간중간 엄마와 권사님과 눈을 마주치기 바쁘던 와중에, 순간 권사님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머지않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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