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남편의 배추절임
어느새 해외생활을 한지도 십 년이 넘어간다. 스무 살에 처음 살았던 남아공에서는 김치 없이도 반년을 살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드니 현지 식단이 더 입에 맞을 만도 한데 나는 어찌 된 일인지 한국 음식이 더 맛있고 그립다. 독일에 있어서 그런가...
6년을 살았던 필리핀에 있을 때도 김치가 필요하긴 했지만 마닐라에는 생각보다 많은 한국 음식점과 식료품점들이 있었고, 제법 맛이 좋은 김치들을 다양한 종류에 괜찮은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기후대가 달라서인지 싱싱한 배추나 열무를 사려고 해도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필리핀에서는 김치를 만드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독일에 오니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사실 독일에도 생각보다 많은 한인 식료품 점들이 있었고, 또 마침 불어 드는 한류와 비건 음식의 바람으로 현지 식료품 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건비가 높은 이유인지 가격은 훨씬 비싼 반면에 맛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반대로 필리핀과는 달리 독일은 기후대가 우리나라와 비슷해서인지 김치재료를 구하는 것은 훨씬 쉬운 것 같았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김치를 사 먹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해외생활 8년 차에, 독일에 와서야 처음으로 김치를 담가봤다. 적게 담을까 했지만 남편은 김치 귀신이었다. 김치를 정말 많이 먹는다. 아무리 김치가 해외로 뻗어나갔다고 해도 여전히 그 냄새나 매운맛이 모두에게 끌리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도 김치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친구들을 많이 봤는데 남편은 그냥 호였다. 그것도 아주 호호호였다.
어린 시절, 고려인 커뮤니티가 많은 카자흐스탄 국경 지역의 러시아에서 자란 남편은 그곳 고려인 분들이 만들어 파는 김치를 샐러드처럼 자주 먹어서 그 맛이 익숙하다고 했다. 나에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만든 김치는 우리가 아는 김치 맛과는 사뭇 달라서 이걸 정말 같은 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것도 김치라 불렸고 남편은 고려인들의 김치도 한국 김치도 둘 다 모두 사랑했다.
남편의 김치 사랑은 우리가 처음 나의 할머니를 찾아뵈었을 때 빛을 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