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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22. 2022

채식도 좋고 삼겹살도 좋아

베를린 살이 3년차 한국인의 식탁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채식보다는 로컬, 재철음식을 먹자는 주의가 더 큰 사람인데 그렇게 장바구니를 채우다보니 어느새 채식 식단이 더 많아진 요즘이다.


독일에 살아도 하루에 한끼는 밥을 챙겨먹느라 밥과 함께 먹을 간단한 국을 만들어 먹으려고 하니 항상 집에는 두부가 남아 있었는데, 그 두부를 어떻게 더 맛있게 해먹지 하다가 처음 만들어본 두부 스테이크.


요즘 독일에서 재철인 아스파라거스와 명이나물을 곱게 썰어 두부에 넣어주고, 레드와인으로 만든 소스를 함께 올려 먹으니 남편의 엄지 손가락이 굿굿굿을 외친다.






잡채도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고기 대신 버섯을 더 듬뿍 넣어 만들게 된다. 고기 맛이 나서 더 맛있는 음식이 분명 있는 것도 같은데 잡채는 야채만 넣어도 맛있는 음식임이 분명한 듯 하다. 괜시리 야채들도 색깔별로 하나씩 넣어주고 싶은 느낌.





야채만 넣어도 맛있는 건 커리도 비슷한 것 같다. 미리 만들어 얼려둔 야채퓨레와 함께 우유 대신 오트밀 우유를 넣어 카레를 만들면 맛이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다. 고기 대신 양파프레이크를 올려주면 뭔가 비비큐스러운 향이 더 더해져 풍미가 올라가는 느낌.





나는 익숙한 요리들에 재료들을 바꿔보는 스타일이라면 남편은 항상 주어진 재료를 검색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레시피를 시도해보는 스타일이다. 명이나물을 가지고 매번 해먹는 페스토나 전 대신 명이나물 라자냐를 시도해 봤는데 완두콩과 함께 간 명이나물 색감이 형광색처럼 눈에 띈다. 내년 봄 명이나물 시즌에 다시 한번 꺼내보고픈 레시피이다.





남편의 요리는 가끔 무척 정갈하기도 한데 삶은 감자에 또 명이나물이 들어간 요거트 소스 크림. 제법 다들 잘 어울려서 한국 재료들이 그리울때 대체할 재료들을 찾은 느낌이다. 물론 재철에만 가능하겠지만.





명이나물에 못지 않게 요즘 슈퍼에 가면 한창 할인 중인 과일 중 하나는 딸기. 한국에선 겨울에 한창이던 하우스딸기가 들어갔겠지만 독일에선 요즘 한창 딸기가 나오는데 물론 아직 독일 딸기는 아니고 스페인이나 터키, 그리스에서 수입해 들어온 딸기다. 독일 딸기는 날이 좀 더 따뜻해야 나오는데 독일 슈퍼마켓의 거의 절반은 유럽연합 전역에서 재배되어 오기 때문에 딸기의 재철은 이미 시작된 듯 하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크림 위에 올려 먹어도 좋고 빵이랑 같이 먹어도 좋고 그냥 너무 좋아 딸기는 요즘 내 사진 속 주인공이다.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곳이 베를린이 되었는데 베를린에 와보니 비건들의 천국이라는 것을 왕왕 듣게 되었고, 실제로 자주 만나는 친구들 중 비건인 친구들도 늘어나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비건 음식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만드는 일들이 늘어나게 된 것 같다. 비건인 친구가 만들어 준 똠양커리 칼국수. 비건 음식들은 많은 경우 알고 있는 맛 + 다른 알고 있는 맛이 합쳐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곤 했는데, 이 음식은 똠양소스와 타이커리 소스를 합쳐 만들어낸 새콤 구수한 맛이 좋았다. 그러고보면 채식이나 육식이나 더 맛있게 먹고자 하는 욕망은 모두 비슷하다.





분명 예전에 비해 채식 섭취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끊기 어려운, 알고 있는 맛있는 맛, 삼겹살. 독일 친구들은 오히려 기름기와 지방이 많아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 더 안먹는 부위라는데 나는 삼겹살보다 더 안좋아 보이는게 소세지 같은데 이 맛있는걸 왜 안먹지 더 궁금해하곤 했지만, 아무튼 왠만한 음식에 고기 없이 먹어도 괜찮은 내가 삼겹살만큼은 꼬박 꼬박 챙겨먹는 걸 보면 남편은 참 신기해했다. 비빔면에 야채를 듬뿍 넣고 비벼서는 그걸로 모자라 결국 삼겹살 한 접시를 간단하게 구워냈다. 삼겹살은 삼겹살이고 비건은 비건인 어쩔 수 없는 한국인 같은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살이 3년차가 되어가는 요즘, 확실히 식탁에 채소들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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