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들뜰 수 있는 마음

남편의 고뿔

by 따뜻한 선인장

오랫동안 이직을 원했던 남편의 새로운 직장이 드디어 나타났다. 2년 전부터 일을 힘들어하던 남편은 서서히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는데, 첫 해는 쉬엄쉬엄 다른 일을 찾아보다 찾지 못했고 지난해는 첫 해의 경험을 교훈 삼아 제대로 이직준비를 실행했다. 주어진 업무들도 힘들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틈틈이 지원을 하길래 나 역시 정말로 이사를 가는 줄 알고 일 년 내내 대기 상태였다.


그렇게 1년 내내 열심히 지원을 했지만 겨울이 다 다가오는데도 소식은 없었다. 물론 몇몇 회사들이 컨택을 해왔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은 곳은 힘들어도 거절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 해가 지날 즈음 독일의 겨울 날씨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천상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편은 천상 과학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학사와 석사를 줄곧 화학으로만 이어온 아이였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 아닌가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석사까지 다 마치고 직장을 찾아 나서던 때였다. 화학공장들을 좋아할 턱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지원하는 회사들이 다들 외딴 시골 언저리 즈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나보고 정치학이나 인류학 공부를 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냐고, 참 신기한 아이라고 말하던 애 치고는 참 자신도 신기한 아이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도시에 살기엔 도시에 위치한 대기업들을 들어갈 수 있는 경력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기엔 심심할 것 같고, 그러다 운 좋게 베를린에서 지금의 일을 잡았다. 하지만 주소상으로만 베를린이지 사실 베를린보다 그 외곽의 브란덴부르크 도시가 도보로 5분 거리이니 베를린에 산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외곽지역이긴 했다.


회사를 다니던 첫 몇 달, 남편은 금요일이라 들떠있는 나에게 금요일이 왜 특별히 좋은지 물으며 자신은 금요일이나 월요일이나 모두 좋다며 월요병이 뭔지를 묻는 신선함을 선사했었다. 말로만 듣던 독일의 노동복지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나 보다고, 정말로 독일은 한국보다 월요병이 뭔지를 모를 정도로 훨씬 좋은가 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아이 었었는데…


어느샌가부터 남편도 월요병은커녕 심지어는 일요일 어떨 때는 토요일부터 다음 주 업무에 근심이 덮여있는 날들이 생겼다. 여름에는 심지어 한 두 주를 빼고 줄줄이 토요일 업무까지 나가기도 했다. 나는 남편에게 정말로 독일에서 일하는 것이 한국에서 일하는 것보다 정말 나은 거냐고 재차 물어보기도 할 만큼 힘든 시간들도 있었다.


처음에 이직을 준비할 때는 남편이 외국인이라곤 하나도 없는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도 겁을 주어서, 남편이 지금보다 더 나은 회사에 가면 좋겠다는 마음 한편에는 그래도 베를린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다. 지금껏 해외에서 살아오면서 언제나 큰 도시에서 나와 비슷한 외국인 학생이나 노동자인 친구들과 함께 둘러싸여 해외생활을 이어온 것이 큰 힘이었는데, 그런 비슷한 동지들 없이 독일 사람들만 있는 마을에 나 혼자 외국인으로 살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힘들어하고, 남편이 힘들든 말든 쏟아지는 일을 계속 넘기기만 하는 남편의 회사를 보며 이제는 베를린이고 시골이고 간에 어디든 이곳을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바라게 되었다. 그렇게 작년 한 해동안 우리는 새로운 일을 바라고 이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얻지 못했고,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고 나니 우리는 오히려 초연해진 것 같았다.


우리는 그저 변함없이 해야 하는 것들을 계속 해냈고, 거기에 헬스장을 둘 다 끊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고, 남편은 회사가 끝나면 사우나에 가서 스트레스를 녹여버리고 돌아와 다시 이력서들을 썼다. 그렇게 새해의 첫 달이 끝나고 하나 둘 남편을 부르는 회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주는 인터뷰만 세 개씩 보는 주도 있었다. 직접 가야 하는 면접도 있었고, 그렇게 온몸이 부족하게 움직이던 남편은 드디어 오랜 시간 끝에 새로운 회사를 찾게 되었다.


남편이 새로운 계약서를 들고 오던 날, 우리 둘은 분명 오랫동안 바라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 기다림에 지쳐서인지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선 음식을 해먹을 기운이 없어 밖에 나가 간단하게 케밥을 하나씩 손에 쥐고 먹었다. 엄청 축하해 주고 방방 뛰고 폭죽을 터트려주고 싶었는데 그렇기에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렸고, 그래서 그동안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 같았다.


새로운 일을 잡았어도 여전히 나는 독일 겨울 날씨에 피곤했고 자주 찾아오는 감기와 알레르기에 여전히 잠을 자주 깨곤 해서 피곤했다. 그런데 새로운 계약서를 받고 난 뒤 며칠이 지나선 남편도 뭔가 피곤해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잠을 잘 못 잔 것은 아닌지 물어보니 남편이 말했다.


“응. 너무 들떠서.”


들뜬다는 말을 새삼 무척 오랜만에 들어본 느낌이었다. 뭔가 소풍 가기 전 날 잠을 못 자는 아이 마냥 겉으론 어른인 듯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너무 들떠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니. 너무 귀여웠다:) 쨍하게 축하할 기운이 없을 뿐이었지 마음속에선 엄청나게 들떴었구나 싶어 그 대답이 내 마음까지 들뜨게 만드는 듯했다.


그렇게 한창 마음이 들뜬 남편은 새로운 계약서를 받고 맞이한 첫 주말, 카페도 가고 싶다고 하고 밥도 밖에서 먹고 싶다고 하고 어디든 무엇이든 하자고 설치다가 결국 고뿔이 들고 말았다 >o< 빡빡해지는 업무에 다른 회사들 지원까지 기운이 쏙 빠졌던 작년에도 한 번 걸리지 않던 감기였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찾아온 고뿔 덕분에 남편은 그나마 다시 차분해졌다.


이 며칠간의 에피소드를 겪으며, 이제는 서른보다 마흔이 더 가까운 나이에도 이렇게 새로운 일과 직장으로 마음이 한껏 들뜰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얼마나 예쁘고 감사한 일인가 싶었다.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 해본 것들이 있고, 겪어본 것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재미를 잃고 흥미를 잃고 열정을 잃기가 쉬운 세상에 내 바로 옆에 이렇게 생의 설렘을 나이가 들어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다. 우리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그런 사람인 듯 하다. 나도 그런 설렘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느끼고 표현하며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여름엔 이제 베를린이 아닌 보덴호수 근처에서 귀여운 남편과의 일상을 이어갈 것 같다. 월든을 읽으며 언젠가 호숫가에서 살며 글을 쓰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호수가 독일과 스위스, 리히텐슈타인의 국경 안인 보덴호수일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실현되려고 하니 나도 남편처럼 설렘에 밤잠을 설쳐야 할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잠이 너무 잘 온다. 물론 직접 마주할 풍경을 상상하면 마음이 들뜬다. 올여름이 궁금해지는 2월의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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