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처럼 떠나고 싶지만 나무처럼 정착도 하고 싶어

식물들을 만나러 가거나 키우거나, 해외생활과 정착

by 따뜻한 선인장




일이나 여행이나 공부 등의 이유로 어쩌다 보니 내 20대는 한국에 있던 날만큼이나 해외에 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것도 같다. 그렇게 어느날, 여름엔가 한국에 들어와서 경복궁인지 서촌인지 어느 작은 한옥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라 저녁이 되어도 하늘은 제법 밝았는데 친구는 그 하늘이 어두워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만히 처마 밑에 앉아 친구를 마냥 기다렸다. 사람들이 어느새 하나 둘 사라지고 가로등의 등불이 켜지고, 문득 눈 앞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와 나만 이곳에 남은 것을 알게 되었다.


소나무를 가만히 쳐다보는데 제법 나이가 들었을, 사실 드셨을 정도의 풍채를 가지신 소나무처럼 보였다. 그 정도의 나이라면 아마 지금의 나뿐만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서 한국전쟁도 봤을 것 같았고, 잘하면 그렇게 피 터지게 싸우던 남북이 조선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이어졌던 그때 사람들도 가만히 내려봤을 듯한 나무였다. 나도 모르게 그 나무에게 속삭였다.


'넌 매일, 그렇게 오랫동안 한 자리에, 한 곳에 있으니 무척 심심하겠다. 나는 벌써 아프리카도 다녀오고, 인도도 가보고, 필리핀도 가보고 세상 구경 마음껏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왔는데.'


당연히 나무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하늘은 어둡고 가로등 등불만이 소나무를 조용히 비춰주는 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한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찾으러 와줬어. 나는 여기 가만히 서있었어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


나무에게 혼잣말을 했던 건 나무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했던 말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그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에서 소나무와 나,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나무 한 그루를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본 것이 처음 있는 일인 것도 같았다. 그렇게 계속 바라보다 보니 소나무는 뿌리는 많지만 다리가 없어서 한 곳에만 계속 지내야 한다는 것도 처음 깨달았다.


가끔씩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걸로 태어나고 싶어라는 질문에 예전에는 아주 가끔이지만 나무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의 답을 듣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걸 알게 된 이상 나무로 태어나긴 글렀다. 이렇게 한 곳에만 있어야 한다면, 나였다면 못 참았을 것이다. 그 답답한 마음이 너무 와 닿아서인지 나도 모르게 소나무가 다른 세상을 보고 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이겠다 싶어 나무에게 인지 나에게 인지 혼잣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상상도 못 한 대답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 예상치 않았던 대답이 정말 나무가 나에게 알려준 것인지 혹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다른 소리였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때 그 나무가 나에게 했던 말은 그 짧은 만남 이후로도 소나무가 보이는 어느 곳에서든 잔잔히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세상,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궁금해 직접 찾아 나섰다면, 나무는 그렇게 한 곳에만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서 있었지만 그가 버틴 그 수많은 시간이 오히려 세상 사람들을 나무에게로 찾아오게 만든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딘가를 찾아 떠나는 것도 어렵지만 사실 한 자리에 오랫동안 머무르고 기다리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 어려운 인내의 시간을 버텼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 나무를 보러 직접 움직이게 만든 것이었다.


매번 어딘가를 떠나야만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무언가에 다달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저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면 되는 거지, 누가 누구를 더 부러워하거나 어떤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그때 나는 처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나는 그 후에도 계속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그렇게 한참의 세월이 지나고 이번에는 뜬금없이 독일, 베를린에서 식물들을 집에 초대하며 거리를 걷는데 문득 그 옛날 그 소나무가 생각나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식물을 키우기로 마음을 먹고 새로운 식물들을 집에서 키우면서, 나는 식물 키우는 것에 생각보다 더 빠져들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벌써 서른이 넘은지도 한참이나 되었고, 지금껏 식물들을 키울뻔한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왜 나는 지금껏 이 아이들을 한 번도 키워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졌다.


소소한 이유들이 머릿속을 며칠 동안 스쳐 지나갔고, 어느 날 문득 그 옛날 소나무가 나에게 들려준 소리처럼 마음속에서 아하 싶은 대답이 떠올랐다. 지금, 왜 지금까지가 아닌 지금에서야 식물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정착을 했기 때문이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렇게 매번 어딘가를 떠돌던 내가 드디어 어딘가에 정착을 했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식물들을 집에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식물 하나하나가 어느 나라에서 살다 왔는지 살펴보면서, 그동안 나는 언제나 그랬듯 내가 있는 공간에 식물들을 초대하기보다 내가 직접 식물들이 사는 곳에 찾아갔던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 살게 된 식물 대부분은 내가 예전에 여행을 했거나 조금은 살아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건조 혹은 열대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어찌 보면 나는 여태껏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식물들이 태어난 고향에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식물을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분명 예전에도 나는 이 아이들을 그들의 고향에서 몇 번은 마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식물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는 이유는 그때의 나는 어딘가에 머물면서도 어딘가로 떠나길 원했었고, 지금의 나는 어딘가에 가끔 떠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한 곳에 머무는 것이 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나는 항상 한 해가 끝나면 한국에 잠시 들어와야 했고, 올해 살았던 그 집이 내년에 살게 될 집과는 또 달랐다. 매일매일 물이나 바람이나 햇살이 필요한 식물들에겐 가장 기본적인 영양분들을 일정한 장소에서 꾸준히 챙겨줄, 일상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했지만 그때의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때보다 미래인 지금에 와서 나는, 내가 어딘가를 나서야지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식물들을 우리 집한 켠에 들여놓으며, 이제 나의 삶이 그 옛날, 짧지만 강렬한 대화를 나눴던 그 밤의 소나무처럼 어딘가, 한 곳에 가만히 정착을 하게 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말없는 생명체들이 참 신기하게도 나를 또 혼자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혼생활이라는 것은 유학이나 국제개발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기간보다는 분명 훨씬 긴 시간을 동반하는 듯했지만 (혹은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나의 결혼생활과 그로 인한 정착이 그때 만났던 소나무처럼 내가 어느 한 곳에 진득하니 정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인지는 여전히 나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 나에겐 결혼을 하고 살아온 시간보다 혼자 자유롭게 떠돌아다닌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정착을 한 듯한 이 느낌이 어째 조금은 반가우면서도 얼떨떨하기도 하고 불안정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집에는 이제 내가 돌봐야 하는 식물들이 생겼다는 것, 그래서 나는 아마도 지금 당장은 이곳 어딘가에 정착을 하긴 했나 보다고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이 식물들과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우리들의 생을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이 곳이든 또 다른 곳이든 스무살, 어느 여름밤 나눈 소나무와의 대화처럼 떠나게 되든 머물게 되든, 무엇이든 괜찮을 거라고, 말해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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