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도 해외생활 적응 중입니다,

지금의 나처럼.

by 따뜻한 선인장



해외에 사는 초보 식물 집사


식물을 집에 데려오기만 하면 그때부턴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그램 속 사진이나 베란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리 집 식물들도 잘 자라 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게 우리 집이 되면 그 모든 그림과 사진들이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새내기 식물 집사들은 알게 된다.


큰 맘먹고 식물들을 사서 집에 데려왔는데 막상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떻게 둬야 할지 화분을 바닥에 잠시 내려놓고 머릿속에선 끊임없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이 아이 이름은 뭐였더라.'

'어디에 두어야 하나? 창가에 두면 다 괜찮으려나?'

'물은 얼마나 줘야 하나? 흙이 마른 것 같은데 바로 주면 되나?'

등등등.


생각보다 훨씬 생각해야 할 질문이 많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초보 식물 집사는 막막해진다.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달리 식물들을 막상 집에 데리고 오면 그제야 이들도 살아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먹을 것부터 놓일 곳, 넣을 것까지 생각보다 생각 없이 그냥 두면 안 되는 생명체들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생긴 새로운 습관은 하나하나 식물 이름들을 검색해 보는 것이었다. 신기하게 식물들 중에는 영어 이름과 한국 이름이 같은 것도 있었고, 또 다른 것도 있어서 처음에는 갈팡질팡 했다. 처음엔 한국어로 검색한 대로 식물들을 키우다가 무언가 잘못들이 반복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은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것이었다. 한국과 독일. 비슷한 듯싶으면서도 기후, 습도, 물 모두 달랐다. 그다음부턴 네이버보다는 구글에서 식물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가장 기본적인 정보인 습도, 햇빛, 흙, 물 등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식물 하나하나에 대해 알게 되면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지금 이 식물들의 몸체는 우리 집 거실에, 그러니까 독일, 베를린이라는 동네에 살게 되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햇빛과 흙과 습도는 그들이 원래 살았던, 고향과 같은 곳의 환경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나 유럽에 있어도 여전히 김치나 밥이 먹고 싶은 나처럼 말이다.




알고 보니 나와 닮은 이민생활 중인 식물


집에 있는 식물들이 하나 둘 늘어나며 알게 된 사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실내식물, 혹은 실내 정화식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는 상당히 다른 지역에서 온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습하고 나무 그늘이 가득 덮인 열대지역인 동남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왔거나 무척 건조하고 해가 쨍쨍 나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평소에는 건조하고, 해보다는 구름이 많고, 한 여름에도 선선한 (특히 올해) 독일의 날씨와는 정 반대의 환경에서 태어난 식물들이 많다. 그래서 같은 집이라고 하더라도 특정 위치에 잘못 두거나 물을 잘 못주면 화원에선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아이들도 벌레도 하나 보이지 않는데 시름시름 앓는다. 독일에 처음 와서 물갈이를 하고, 음침한 겨울 날씨에 마음마저 우울해지던 나처럼 말이다.


필리핀에서 독일로 처음 옮겨와서 맞았던 가을은 무척이나 어둡고 차가웠다. 특히 나에겐 독일의 비가 기억에 남는다. 필리핀은 더울수록 비가 자주 왔는데 독일은 추울수록 비가 자주 왔다. 필리핀에서 기억하는 비는 원래 하늘에서 내리는 따뜻한 물이었는데 독일에 와서야 비가 무척 차가워서 놀랐다. 차라리 눈이 더 따뜻하겠다 싶을 정도로 차갑게 시린 비였는데도 신기하게 여기 사람들은 비를 맞고 다녔다.


우기에 열대지역인 필리핀은 워낙 비가 자주 왔기 때문에 독일이 생각보다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내 피부는 무척이나 당긴다는 것이었다. 필리핀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서 피부가 마를 일이 없었는데 태어나서 처음 독일에 와서 나는 건성피부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참 신기하게도 식물들도 비슷한 듯했다. 아무리 물을 주고 공중 습기를 보충한다고 분무기를 뿌려도 습기에 예민한 식물들의 잎은 쩍쩍 말라갔다. 석회수가 섞인 물이라 물갈이를 하나 싶어 증류수를 줘도 한번 망가진 잎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식물들의 고향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케이프타운에서도 살았고, 또 인도나 필리핀에서도 살았던 나는 독일의 환경이 그곳들과 얼마나 다른지 떠올렸다.


그제야 독일의 어둡고 차가운 가을, 겨울이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햇살이 가장 좋은 늦봄부터 식물들을 들였는데 이젠 이 식물 친구들이 살았던 고향, 그 어디에도 없을 독일의 구름 끼고 차갑고 축축한 가을 겨울이 찾아왔다. 코로나로 어쩌다 집에만 있게 되어서 발견하게 된 식물의 세계였는데, 이렇게 독일의 겨울을 처음 맞게 되니 이제야 내가 지금 이 식물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식물을 조금 키운다는 사람들은 집에 가습기고 식물조명이고 유난스럽게 연구실을 만든다 생각했는데 유난히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식물에게나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 넉넉한 시간


식물들에게 고향만큼 좋은, 최적화된 환경은 없겠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존에 찾았던 식물 키우기 매뉴얼에서 특별히 겨울철 관리법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식물을 키우는 커뮤니티에 내가 키우는 식물들과 비슷한 상태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질문과 조언들을 읽으며 나는 우리 집 식물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곳의 햇빛과 물과 공기에 익숙해지면 식물들도 조금씩 또 새로운 이곳에 적응을 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언어는 물론, 음식, 사람들의 표정, 빗물의 온도, 피부의 건조함까지 그렇게 낯설던 독일의 첫인상도 한 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처음 왔을 때보다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을 알고 있었다. 피부도 더 이상 당기지 않았고 비듬도 사라졌다. 여전히 한국 음식이 좋고 특히나 떡볶이가 자주 먹고 싶지만 그래도 가끔씩 먹는 독일의 커리부어스트도 맛있어졌다. 내가 이렇게 베를린, 독일에 조금씩 적응을 하듯 우리 집 식물들도 새로운 환경에 자연스레 적응을 해줬으면 싶었고, 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굳이 유난스레 식물들을 위해 물을 사고, 조명을 사고, 비싼 흙을 구매하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 것이라면 내가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지속 가능하게 꾸준히 돌볼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 집 식물들을 키우고 싶어 졌다.






적응하기 힘들어 마르고 시들어버린 이파리들은 과감히 잘랐다. 햇빛과 통풍 문제는 자리배치를 통해 이곳저곳을 시도해보고 나니 생사를 오고 가던 식물들 몇몇이 다시 혈색이 돌고 새잎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식물들이 새로운 집에 적응해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의 기분 역시 좋아졌다. 식물들과 나, 이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 언젠가 우리 둘 모두, 이 새로운 장소인 독일이라는 곳에 잘 적응하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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