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던 엄마의 유산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사진을 찍는다. 예쁜 카페를 찍고, 음식을 찍고, 책을 찍는다. 이십 대까지만 해도 셀카나 친구들의 사진을 많이 찍던 친구들이 어느샌가부터 귀여운 딸, 아들의 사진들을 더 많이 찍는다. 아이들이 없는 친구들은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 사진을 올렸다. 아이도 없고 애완동물도 없는 나는 식물들을 키우고부터 우리 집 식물들을 기록에 남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나 동물들처럼 발이 달려 움직이는 식물은 없으니 식물을 집에 들여놓은다고 해서 처음부터 드라마틱하게 무언가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책이 있던 자리에 식물들이 들어섰고, 매일 같이 물을 줘야 하는 식물들 때문에 식물들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움직여야 했다. 활동적인 강아지나 쑥쑥 자라는 아이들에 비하면 식물들은 무척이나 정적이었다. 크는지 안 크는지,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모를 정도로 식물들은 살아있는 생물보단 멈춰있는 사진 같다는 생각이 더 들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더디고 정적인 듯한 식물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생명이 있는, 살아있고 움직이는 생명으로 변하는 시기는 꽃이 필 때다. 꽃이 피거나 새싹이 나면 거북이처럼 그 모습 그대로 극락왕생할 것 같던 식물이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쑥쑥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자녀가 있는 부모님 말처럼 새싹이 나고 꽃이 피는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이 변해서 나 역시 그 예쁜 모습들을 놓칠까 나도 몰래 사진 찍기에 바빠진다.
따지고 보면 모두 초록색이거나 아니면 비슷한 색깔을 가진 몸체인데 꽃의 모양과 색은 어찌나 제각각인지 포레스트 검프에서처럼 같은 초콜릿 박스에서도 무슨 맛이 나올지는 모르는 인생처럼 다채롭다. 식물의 이름은 알았지만 꽃이 피는지 몰랐던 식물들에서 꽃이 피어나면 한 사람이 작은 우주인 것처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식물들도 다시 보인다.
이렇게 신기하고 예쁜 식물들 사진들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내니 남편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장모님 같아"
외국인 남편이라 우리 엄마를 직접 본 건 세 번밖에 안되는데 네가 우리 엄마를 어떻게 알아라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니 정말이었다. 엄마는 해마다 계절이 바뀌면 바뀌는 꽃 사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같은 사진을 안부인사로 이모에게 보냈더니 우리 이모 말씀.
"넌 정말 너네 엄마 딸 맞네. 나는 선인장도 죽이는데 너는 식물도 엄마 닮아서 잘 키우네."
나는 내가 예뻐서 보내는 건데 왜 사진을 보내는 사람들마다 엄마를 소환하는 건지, 왜 여기서 엄마가 나오는 걸까 웃었다. 정작 엄마랑 같이 있을 때는 엄마가 아무리 옆에서 꽃이 너무 예쁘다고, 향기가 좋으니 너도 맡아보라고, 새싹이 나오는데 너무 귀엽다고 나는 시큰둥하게 넘어갔었는데 말이다. 어느새 내가 혼자, 엄마처럼 시집을 가고 집에 오롯이 남아 있고 보니 엄마와 닮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학에서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특별했다. 특히 기록을 갖고 있지 않은 소수민족들이 그랬다. 그들의 조상들은 기록보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그들의 문화와 생각과 언어를 담았다. 그래서 기록은 없어도 한 사람이 그들의 조상님이, 부모님이 사용한 언어와 문화를 기억하고 알고 있고 행동하는 담지자이자 또 이를 그대로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물려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소수민족을 생각하면 산업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우리의 일상도 그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구나 싶었다. 공적인 영역에선 우리는 문자를 배우고 기록하면서 학교에 가고 일을 했지만 사실 사적인 일상에선 우린 엄마, 아빠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아도, 그들에 대한 책이 없어도 엄마와 아빠를 닮아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글자가 없어도, 기록하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보고 배워 닮아가는 부분이 우리 인간에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따라 봄이면 할머니 댁 뒷동산에 냉이와 달래와 고사리를 따러 다닐 때 먹지만 말고 어떻게 생겼는지, 향기는 어땠는지 잘 기억해 뒀으면 그곳이 한국이든 필리핀이든 독일이든 엄마가 없어도 잘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한참을 지나고 보니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도 같았다. 아주 작은 우리 동네에서도 엄마는 나에게 커다란 추억을 남겨주었던 것이었다. 엄마는 내게 좋은 영향을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남겨주셨던 것인데 엄마와 떨어져 사는 이제서야 엄마가 좋아한 걸 그때 나도 같이 즐겼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식물 사진들을 보내다 뜬금없이 다시금 확인한 나의 정체성을 생각하며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가까이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은 정말 서로를 닮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게 모르게 엄마를 통해서 나는 엄마의 좋은 습관들을 배웠나 보다.
엄마는 가난할 때에도, 부족함이 없을 때에도 되도록이면 먹는 음식은 창의력을 발휘해 건강하게 먹으려 하셨다. 그건 내가 남아공에 가든 필리핀에 가든 그리고 지금은 살고 있는 독일에서까지 한국의 식재료가 없으면 현지의 비슷한 재료들을 찾아 건강하게 음식을 해 먹게 만드는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 나에겐, 처음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려줘서 깨닫게 된 식물 키우기라는 취미가 우리 엄마처럼 생겼다. 엄마와 내가 키우는 식물들은 다르지만 이렇게 나이를 함께 먹어가며 같이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다행이었다. 엄마는 한국에서, 나는 독일에 살면서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면서 언젠가 우리가 더 멀리 떨어지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서로의 좋은 습관을 내가 잘 간직해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 감사하다. 그리고 엄마가 그랬듯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언젠가 그 사람에게도 따뜻한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