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년 기념, 문자 디톡스
우리는 1주년이 되는 기념으로 처음, 주말 동안 연락을 쉬기로 했다. 롱디인데, 그것도 1주년인데, 어떻게 보면 참 특이한 제안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기로 했다.
누가 누구에게 강요한 적도, 부담을 준 적도 없지만 생각해보니 우리는 어느새 1년 동안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런 일은 남자 친구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남자 친구가 처음 이번 주말엔 한번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순순히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우리는 만난 지 일주년 기념으로 메시지 디톡스 기간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평소에 특별히 의식하고 남자 친구에게 연락을 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막상 연락을 하지 말아야지 라고 의식해서인지 이래저래 남자 친구 생각이 하루에도 이렇게 문득문득 나는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연락을 쉬어보니 반대로 내가 얼마나 자주 남자 친구를 생각하는지 알게 되는 아이러니.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는 우리가 한 해 동안 만났던 세 번의 여행이 떠올랐다. 우연히 지난봄, 발리의 작은 현지 숙소에서 만났던 첫 만남부터 여름, 남자 친구가 자라고 공부했던 독일 남쪽 도시들이 떠올랐고, 낮잠을 잤던 공원이 그리웠고, 처음 사귀자고 말했던 궁전도 생각났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즈음 이번엔 그가 내가 사는 곳에 와서 한국의 가을을, 운치를, 맛을 함께 느꼈던 마지막 여행도 생각났다.
만나고 사귀기 시작한 한 해동안, 우리는 딱 세 번을 만난 커플이었다. 발리, 독일,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남자 친구의 호기심 많은 모습만이 아니라 진지하기도, 장난스러운 모습도 기억났고, 서양의 궁전이나 교회가 아닌 동양의 궁이나 절을 배경으로 찍은 남자 친구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의 연애가 꿈이었나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