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아서 영원할 수도 있는 것
남자 친구가 생기고 나서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면서부터 결혼한 친구들에게 뜬금없이, 하지만 진심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 중에 하나가 있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우리 모두가 완벽한 사람들도 아니고, 또 그만큼 각자 좋은 부분들이 있는데, 그 몇몇의 좋았던 남자 친구들 중에서 결혼은 어떤 사람이랑 하는 거야?"
결혼은 결국 어떤 사람이랑 해야 하는지가 질문의 핵심이었는데 이미 결혼한 당사자들인 내 친구들은 답을 알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본인들도 알고 한 게 아니었다거나 알고 한 줄 알았는데 그게 맞는 건가 요즘 다시 심각하게 생각 중이라거나... 농담 반 진담 반스러운 친구들의 답변에 나도 더 아리송해졌다.
심리학에서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그림을 보다가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의식에 해당하는데 그럼 나의 의식이 바뀌면 그 빙산 아래 숨겨져 있는 무의식도 따라 변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알 수 없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체계에서 사랑은 어디 즈음에 있는지도 궁금했다.
사랑의 모양도 각각의 사람들만큼이나 다르겠지만 우리는 그중에도 국제연애였고 장거리 연애였다. 나의 모든 삶은 나와 익숙한 곳, 필리핀이나 한국에 연결되어 있지만, 남자 친구는 나에게 너무나 멀고 낯선 곳인 독일에 있었다. 그럼 나는, 우리는 어디에서 만나야 하나,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주변에 비슷한 상황에 있는 롱디 중인 커플들에게 물어봤다.
친구들은 정말 사랑한다면 자신은 남자/여자 친구 하나면 충분하다고, 가볼만하다고 말을 했다. 그럼 나와 그는 충분히 정말 사랑하지 않아서 이렇게 우리 둘 빼고도 생각할게 너무 많은 걸까? 물으면 물을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질문, 도대체 사랑이란 뭘까?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결국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당사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랑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의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마다, 커플들마다 처한 상황과 신념에 따라 사랑의 정의는 다르고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남자 친구와 내가 공유하는, 지금 우리의 관계를 편안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우리가 모두 다른 사람이라는 전제의 이해였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 나는 나와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끌렸다. 나와 비슷한 전공을 공부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기타를 연주한다면, 내게 맛있는 음식을 너도 좋아한다면, 어머 우린 이렇게 똑같다고, 잘 맞는다며 더 많은 것이 비슷하고 같아지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린 로봇이 아닌 인간이라 인간이라는 종의 공통점을 제외하고 그렇게 몇 안 되는 비슷한 모습을 처음부터 모두 찾아내고 나면 그다음부터 마주하게 될 모습은 내가 비슷했다고 생각했던 기대들이 산산이 깨지는 경험들이다. 사실 어쩌면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지 멘붕에 빠지기도 했었다.
다행히 다름과 다양성에 대한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또 나이가 들어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이제는 비슷한 사람들이 사랑에 빠진 다기보다는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결국엔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 사랑이라는 단어를 잘 나타내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생겼고, 남자 친구도 같음보단 차이의 전제를 공유했기 때문에 우린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같은 감정을 나눈다는 것.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뭘까?
영원한 사랑이란 건 있는 걸까?
우리는 영원할까?
유치할 수도 진부할 수도 있는 사랑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한 커플에게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질문도 있을까. 영원하지 않을 거라면, 끝나버릴 거라면 왜 우린 굳이 이 사랑을 하는 걸까. 남자 친구는 나에게 가끔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는 게 아니라고 해놓곤, 내가 이 질문을 던지자 다시 질문으로 답했다.
"내가 우리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말하면 정말 그 사랑은 영원한거야? 영원할까?"
동양사람들은 말이 가진 힘을 믿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 대만, 베트남 등지에 가면 한자의 '복'이나 '부'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글로 써서 여기저기 부적처럼 붙여 놓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람들은 말을 통해 마음가짐을 다잡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실제로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콩이고 팥이라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처럼 말도 실제로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말을 하든, 글을 쓰든 해야 무언가 이뤄질 것이라 믿는 문화에서는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말하는 대로 이뤄질 것이란 생각을 하기에 그래서 말이 중요했다.
나도 말이 가지는 힘을 부정할 순 없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그 말을 하기까지, 결정을 하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대화가 오갔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본인이 무엇을 알거나 모르고 있고, 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의미와 과정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사랑이라는 것이 영원하기가 쉽지 않다면 그러니까 말이라도 더 영원하다고 해서 마음을 잡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남자 친구가 영원하다고 말하면, 정말 그건 영원한 것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말의 의미가 또 다른 의미도 숨어 있음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남자 친구의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가 처음 필리핀에서 통역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선교지 사역을 하러 오신 분들이 필리핀의 가정들을 방문하다가 가톨릭 신자를 만나게 되었다. 한참 대화를 이어가는데 갑자기 그분들은 나에게 성모 마리아 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면서 이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하라는 것을 통역하라고 부탁하셨다. 순간,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통역을 멈췄다. 저 사람들에게는 말이 곧 힘이 되고 현실인 것처럼 상대방이 그저 앵무새가 사람 말을 따라 하듯 믿는다고 말을 하면 정말 상대방은 신을 믿게 된다고 정말로 생각하는 걸까. 믿음이라는 게 저렇게 믿는다고 말만 하면 얻어지나...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믿음은 말뿐이었던가... 하는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남자 친구가 "내가 영원하다고 말하면 정말 영원한 거야?"라고 물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때 신을 믿는다고 말하라는, 통역을 부탁했던 그 사람들이 떠올라서 "아니"라고 답했다. 말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또 그 전부도 아닌 것을 아는 순간, 그럼 정말로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영원할 수도 있는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걸까...
한동안 그럼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나 적막이 흐르다가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