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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Jul 14. 2020

나이가 든다는 것

내 딸이 중3 때였다. 학교에서 부모님들 중 괜찮은(?) 또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분들을 모셔서 직업 소개 교육을 하는 행사가 있었다. 나도 뽑혀서 조종사에 대해 수업을 하러 갔었다. 파워포인트도 만들고 선물도 챙겨가서 수업을 했었다.

학생들이 원하는 직업 수업교실을 골라 수업을 듣는 방식이었다.

중3 어린(!) 아이들이라 별생각 없이 갔는데 그게 아니더라.
수업 중 2명이 눈에 띄었다. 유달리 다른 아이들보다 성숙하고 예뻤던 아이들. 자연히 수업하면서 그 둘에게 다른 아이들보다 눈이 더 가게 되는데, 그중 한 아이가 묘하더라.
분명히 강의가 아니라 내 시선을 따라오고, 내 시선이 마주치면 묘하게 웃고,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묘한 포즈를 짓고...

당황스러웠다. 분명 남자의 시선을 알고 남자의 행동변화를 즐기는 여인 같았다.
불편했다. 그 아이의 태도, 시선, 나를 유혹하는 듯한 표정.
말로만 듣던 그런 아이인가? 벌써부터 어른들 가지고 장난치는?

돌아와서 반성을 했다.
꼬마 딸 또래 아이를 보고 별 생각을 다한다는...

이제는 딸과 동갑내기들이 대학 4학년이다.(딸은 휴학 중) 돌이켜보면 내나이때 4학년이면 결혼도 하고 정말 다 큰 나이였다. 지금도 그렇고.

하지만 내 딸을 보면 여전히 아기 같고, 철없는 소녀 같다. 그 친구들이 하는 짓들이나 언행을 봐도 그렇고...

그런데 그 꼬마들이 이젠 다 큰 어른들이다. 그 애들이 아직도 덜 성숙한 꼬마들인 게 아니라, 내가 그 아가씨들보다 훨씬 늙고 겉만 성숙해버린 할아버지에 가까워진 아저씨가 된 것뿐이다.

항상 전화 통화로나 말로 건네 듣던 딸 친구들이 가끔 집에 놀러 오면 놀란다.
"아니! 쟤가 이렇게 훌쩍 컸어?!"
내 딸은 그대로인데, 친구들은 내 딸보다 훌쩍 커서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내 딸 친구들은 내 딸보다 성숙했을 뿐 어린아이들 같다. 그런데 그 동갑내기들이 내가 직장에서 만나는 승무원들이고, 직장인들이고, 사회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창나이의 아가씨들이다.

이제는 한껏 차려입은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들을 보면 아름답다, 보기 좋다, 눈부시다 라는 생각은 들어도,
젊은 날처럼 성적인 생각이나 이성으로서의 매력적인 생각이 덜 든다. 20대나 30대 초반보다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이성이 훨씬 매력적이다.

하지만 훨씬 성적으로 매력적이라고 해서 그런 생각을 그 자리에서 그 사람 앞에서 입 밖으로 내뱉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사회적 규약과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규칙에 따라 나 같은 법적으로 구속된 사람이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 그리고 지위를 고려함 없이 일방적으로 그런 생각을 상대방에게 말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그런 규약이나 동의와 상관없이 옳은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한 동성들끼리 있을 때야 무슨 말을 못하랴?(단톡방은 성격이 좀 다르다. 그야말로 내뱉은 생각 한마디 한마디가 활자로 박제되니까...)

어느 존경하는 박사님이 그러더라.
"나에게 성관련 문제는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내가 화가 나느냐? 안 나느냐?로 구별된다. 내 딸에게 가해진 행위에 내가 화를 내고 있다면 그건 잘못된 행위이다."라고.

지금까지 나름 성추행이란 건 해 본 적이 없다.
나 싫다는 여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직장 내에서 나와 상하관계가 있는 이성을 단둘이 만난 적도 없고,
단둘이 만난 이성과 신체적 접촉은 하지도 않고, 대화에서 부지불식간에 내가 한 이야기가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항상 이성과 만나고 돌아설 때면 바둑처럼 복기를 한다.(사실은 성별과 상관없이 아직 친하지 않거나 나보다 높은 사람을 만나면)
오늘은 말실수가 없었나? 내가 한 말에 상처입지를 않았나? 그런 게 항상 스트레스이다 보니, 웬만해서는 이성과 단둘이 만날 일을 만들지 않는다.

군대에 있을 때도 여군 부하가 들어오면 편대 사무실 문을 열어뒀고,
지금은 같이 비행을 하는 부기장이 여성이면, 말도 아끼게 되고, 가급적 그의 손끝을 보려 하지 신체를 보려 하지 않는다. (민항에서의 조종이라는 행위가 monitor라는 행위도 포함되기에 전혀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순간이 많다.

그러고 나서도 숙소에 돌아오면 끊임없이 복기를 하게 된다.

"내 딸에게 다른 놈이 오늘 나와 같은 언행을 했다면 기분이 나빴을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성숙해지고 초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많이 경험해보고 다른 이들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은 하고 싶어도 하면 안 되는지를 젊은이보다는 많이 알게 된 것뿐이고,
하면 안 되는 걸 참는 인내력이 젊은이보다 어쩔 수 없이 커졌다는 것뿐이다.

그런 인내력과 조심성이 없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나잇값을 못한다."라고 하는 것이고...

나이 든 사람이라고 욕망이 없으랴? 단지 조심하는 것일 뿐...

그렇게 오늘도 하루 더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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