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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Jan 16. 2024

[카페매니저‘을’의 푸념] 우유

카페 사장이, 점장이, 매니저가 후져 보일 때가 있다.



[우유를 아끼다 못해,

                           쥐어짜는 사장님.]




몇 년도 더 된 일이니 이젠 말할 수 있다.


내가 일개 알바생이었을 시절, 손님에게 낯가리고, 샷도 겨우 내리고, 스팀도 어설프게 쳐서 거품만 엄청내서 우유를 붓지 못하던 시절, 이때의 내가 눈도 잘 못 마주치는 '사장’ 직함 단 사람이 처음으로 후지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단지, 우유 때문에.


나와 동료라고 부르기 미안했던 경력직 알바생이 전에 일했던 카페 사장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사장님은 우유팩에서 우유를 무한재생해 내는 기적의 사장님이라고.


그 기적의 사장은 우유를 아끼다 못해 쥐어 짜내는 수준이었는데, 음료제조 중 다 썼다고 판단된 우유팩을 스팀피처에 엎어놓고 우유팩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뜨릴 때까지 받아냈다. 하나의 우유팩을 비우면 또 한 팩을 그다음 또 한 팩을.스팀피쳐 위에 거꾸로 고정시켰다.



(내 글솜씨가 부족하여 순간 뇌정지 올 수 있으니, 보는 사람에게 양해를 부탁해야할 정도의 솜씨로 그렸다. 이해가되었으면한다.)


매일매일 그렇게 했단다. 그렇다.

그 삼백육십오일이 맞다.


듣는 순간 헉함과 동시에 심히 걱정되는 단어가 떠올랐다.


‘위생.’


여름엔 손님 회전율이 높아 그렇다 쳐도, 겨울엔? 난방을 미친 듯이 돌리는 찜질방 저리 가라 수준의 카페 안에 두면 상하지 않을까?


“괜찮은 거예요? 그거 써도 되는 거예요?”


경력직 알바생이 고갤 끄덕였다.

문제없다고. 그냥 썼다고.


“요즘같이 추운 날엔 손님이 자주 안 오잖아요. 그래서 좀 어느 정도 찼다 싶으면 피쳐 위에 랩 씌우고 냉장고에 보관해서 썼어요. 라떼에 섞거나 베이스 만드는 걸로요.”


카페알바 초짜일 때도 참 후지다고 느꼈는데,

정말 놀랍게도 그로부터 몇 년 지난 2023년 12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듣고 보았다.

지역도, 카페브랜드도 전부 다른 곳에서. 타사 사장에게서 예~전에 들었던 기적의 사장 모습을 보고 들었다.


세월이 흘러도 기적을 부르는 짠돌이 사장은 어딜 가나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새로 뽑혀 내 밑으로 들어온 알바생 세 명중 두 명정도는  무언가 버리는걸 극도로 눈치 보는 사람들이었다. 남의 가게라 그런가? 처음이라 낯선 곳이라 그런가? 답답했던 내가 앞장서 닳고 닳은 행주를 쥐고 “왜 이걸 써요. 버리고 새거 써요.” 라며 갖다 버리자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 전에 있던 사장님은 아깝다고 해서…”


카페 사장이 이 정도 아낀다면, 다른 것도 아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각종 도구들. 믹서기부터 시작하여 포터필터, 탬핑, 청소 솔, 그룹헤드브러시, 행주, 주걱, 음료를 젓는 숟가락, 미니 쓰레받기 등등 카페 안에 구비된 모든 비품들과 도구들 말이다.


숟가락은 끝이 갈라져 떨어질 때까지 쓰거나, 끝이 뭉뚝해져 빗자루가 제기능을 못할 때까지 쓸거나, 얼음 푸는 스쿱은 금이가도 쓸만하다면서 손잡이가 덜렁거려도 쓰고, 행주는 쿠션감 없어진 지 오래돼 너덜 해져 미끄덩거린다.


그런 행주는 정말 죽은 것이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죽은 행주는 액체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밀어낸다’ 걸!


이런저런 작은 불편함과 구질함을 견디며 이 카페 저 카페에서 지난 5년을 겪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하지 뭐. ㅎㅎ’ 라며 만족했으나 내 뒤통수를 치는 상식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대형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비록 미니사이즈라도)    ‘식기세척기’가 있다는 걸.

(아, 눈물 나는 소형프랜차이즈 카페여.)


왜 사장에게 이의를 제기 못할까 궁금하다면,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알바이므로 가게 내 사정은 내 알 바 아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장님들 개인마다 주관이 굉장히 뚜렷하시므로, 의견을 위한 소통이 자칫 얼굴을 붉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아, 그래도 우유는 좀 아닌걸. 그냥 탈탈 털어 쓰고 바로 씻어 말립시다. 그리고 한 팩에 세척한 여러 우유팩 꽉꽉 모아 우유종이만 담는 종이상자 하나를 만들면 휴지를 받을 수 있어요. 어디서? 동네 주민센터에 가면 무게에 따라 그럭저럭 괜찮은 하얀 두루마리 휴지 서 너 개는 받을 수 있답니다.  

그걸 또 카페 물품으로 활용해 봅시다.

앗, 이게 바로 자원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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