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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Mar 25. 2024

다만 내가 싫었던 건

https://blog.naver.com/dnszz58/223110132168

ㅣ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다른 시선으로 다듬었습니다.


이 집에서 네가 제일 먼저 나가네?

소지품을 정리하다 뒤 돌아보니 활짝 열린 문 앞에 팔짱끼고 비스듬히 서있는 언니가 있었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대충 훔쳤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날 보는 언니에게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 할 말이 없다기보다 묘하게 날선 언니의 말투가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것 처럼 불편했다.  


독립할 결심은 쉬웠으나 가족에게 알리는건 어려웠다. 그리고 부모님께 앞으로 이렇게 살거라는, 막내딸의 세세하고 믿음직스럽고 확실한 미래 계획을 말하는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내 친구들 지금 다 그래. 서울, 경기도, 부산에서 자기 일 하면서 자취하면서 잘만 살고 있어. 나도 할 수 있다고. 제주도가 좀 멀긴한데, 그래도 거기에 친한 친구도 있고 아는 사람도 많아서 괜찮아. 일도 구하면 돼. 오해할 까봐 그러는데, 집이 싫은건 절대 아니야.


그냥, 이젠 집이 답답해서 그래…머릿속에서 수 없이 시뮬레이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을 앞에 앉혀놓고 말하는 내내 목소리는 떨렸으며, 주먹쥔 두 손은 하얗게 질리고 땀이났다.


길고도 짧은 설득이 거의 끝날때쯤 나는 주체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울먹거렸다. 학창시절 반 애들 앞에서 발표할 때 이후로 이렇게 얼굴이 달아오른적이 있던가. 나는 귀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혼자 난리치는 자식을 가만히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엄마와 아빠중 누가 먼저 무슨 말을 할까.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야지.”

그걸로 끝이었다. 이에 아빠도 잘됐다며 새로운 경험 많이하라며 응원해줬다. 뭔가 허탈했다. 그리고 제대로 허락받았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내가 집을 떠날날이 다가올 수록 엄마의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잘 살아내겠나?”

오랜만에 엄마와 단둘이 간 목욕탕에서 내 등을 미는 엄마의 말에 나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이제 와서 엄마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기엔 난 너무 커버렸다. 그게 전부였다. 내가 제주도에 간다해서 다른 행성에 가는게 아니며, 언제나 연락 할 것이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곁에 있을 거야. 그냥 어린 새가 작아진 둥지에서 날개를 펼쳐 떠나듯 내가 원하는 삶을 살러 가는 거야. 라고 설명하기엔 이젠 내가 지쳐버렸다.


“걱정하지마, 거기엔 친구도 있고 아는 사람도 많아.”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한 평생 대구를 벗어난 적 없는 엄마를 설득하려면 내가 괜찮고 안전한 곳에 간다는걸 끊임없이 반복해 말하며 증명 할 수 밖에 없다는걸 알았다.


엄마는 마지못해 고갤 끄덕였다. 새치가 더 생긴 엄마의 옆모습은 누구보다 쓸쓸해보였다. 몇 주전 아빠와 거실에서 나눈 대화와 눈물이 생각났다. 날 곁에 붙잡고 싶어하는 엄마가 안타까웠지만, 내가  미안해 할 일이 아니란 건 안다.


사람들과의 이별 인사는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내 삶에 대한 응원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한 설렘을 얘기했다. 지인들을 찾아가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돌아온다면 찾아 뵐거라는 잊혀질 약속도 했다.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흘렀고 그럴수록 나는 새출발을 할 생각에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날 보며 ‘네가 얄미워.’ 라며 언니는 부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내가 싫어서 나가는거지?”

“또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의 독립이 언니에게 상처가 되는 걸까. 언니는 날 빤히 쳐다보며 삐지듯 입술을 내밀었다. 그래, 우리는 태어나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져 지내본 적 없어. 어쩌다 보니 한참 어린 동생인 내가 먼저 나가고 언니는 집에  남게 되었네. 날 냉랭하게 보는 언니를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약간 고민스러웠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보다 제일 힘든 순간이었다.


”진짜 내가 싫어서 나가는거 아니지?“

“그런게 어딨어. 나 언니가 이럴때 진짜 이해가 안가.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 언니가 왜 싫어? 이상한 소리해 아주.”

“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언니는 여전히 입술을 삐죽 내민채 들어오라 허락도 하지않은 내 방에 멋대로 눕더니 예상밖의 말을 꺼냈다.


“사실, 네가 나가서 편해.”

“응?”

“나는 네가 날 싫어해서 그러는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라서 다행이야. 독립…뭐, 때가 되면 누구나 하는 거니까. 다 그러고 사는걸. 이 좁아터진 방 이제 좀 넓게쓰겠네.”


언니는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그리고 언니는 웃었다.

그동안 내 마음 어디 한 구석을 계속 괴롭히던 불편함이 시원하게 뽑혀 사라졌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 속마음을 말했다. 오해는 풀렸고, 때론 너무 솔직해서 짜증났지만 언니와 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아직 떠날때까지 시간은 넉넉했다. 언니와 나는 드라마 재방송을 보며 어이없는 전개에 분노하기도 하고 웃기도했다. 낮잠을 자고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온종일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으늑한 방에서 하릴없이 뒹굴거렸다. 그럴때면 우리 자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따위 없었다. 누구보다 용감한 히어로가 되어 앞으로 펼쳐질 찬란한 앞길을 생각하며 히죽거렸다.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한 날짜가 다가올 수록 나는 케케묵은 추억의 먼지를 털었다. 아무리 털어내도 이제 더는 보지 않을 편지와 사진이 방구석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왔다. 내 방이라 불리는 공간에는 내 흔적이 조금 남아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때부터 함께한 보라색 캐리어에 가족과 찍은 사진과 어릴적 물건을 몇 개 담았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멀어진 거리만큼 적당히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며 보고싶을것이다. 거실 벽에는 나의 사진이 걸려 있다. 내가 한 번씩 가족을 잊을 수 있어도 나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그런 자신감이 있었다. 언제나 떠나는 건 나였으므로.


그러다 갑자기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온건 내 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을때였다. 문득 나는 그 누구도 날 붙잡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깜깜한 방이 날 집어 삼키는 듯 했다. 어둠속엔 오직 나 혼자였다. 이 외로움을 견뎌야만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 잠못들게 하는 불안이 희미해질 때까지나는 내가 잘 살아낼 것이라 다짐하고 계속해서 다짐했다.


다음날인 출발 당일이 되자 신기하게도 나는 전부 괜찮다는 듯이 느껴졌다. 오히려 여유가 넘쳤달까. 날 응원하듯 날씨도 맑았다. 아빠와 언니는 날 공항에 바래다줘야한다며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집밥을 먹고 그동안 지냈던 집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작았구나. 나는 새삼 이곳에서 내 몸을 구겨넣고 살았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갈게.”

“조심히 가거라.”


엄마와 나는 문앞에서 가벼운 포옹을 했다. 일이 있어 공항까지 못온다는 엄마가 내심 서운했지만 엄마는 영상통화 있잖니. 라며 내 두 손을 꽉 잡고 흔들었다.


대구 공항 국내선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반가움과 헤어짐을 겪고 있었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고 출발까지 남은 따분한 시간을 떼웠다.

드디어 시간이 되자 우리는 국내선 출발이라 대문짝만하게 적힌 문으로 갔다. 언제든 보면 되지. 언니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날 꽉 껴안았다. 검색대에 들어가기전 나는 아빠와 언니를 돌아보았다.


“둘이 나란히 좀 서봐.”

나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냈다. 갑작스런 내 요구에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아빠와 언니는 손가락으로 브이 포즈를 취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는 몰려오는 피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새로운 곳에서 나는 기쁠수도, 울수도, 슬퍼할 수도 있겠고 즐거운 일도 있겠고 때론 화를 참을수 없겠지.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거고, 또 다른 목표가 생겨 거기에 집중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다 만약, 내가 길을 잃고 헤매다 다시 돌아온다면 가족 모두 아무렇지 않게 날 반겨 주길.

다만 내가 싫었던건 이별의 순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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