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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Jun 03. 2024

두부


“버려질 뻔했어, 얼마나 불쌍하던지.” 추운 밤, 퇴근한 엄마가 박카스 상자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자 안에는 꾀죄죄한 몰골의 흰 털을 가진 어린 왕관앵무새가 있었다. 지금도 왕관앵무 네 마리를 키운다고 버거운데, 또 데려오다니. 우리 집이 유기조 보호소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 나 홀로 반대는 소용없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온 그 아이를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이름만큼은 내가 지을 거라며 가족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사이 몰래 다른 집에 보낼 궁리만 했다. 그 아이가 밥 먹는 모습도 꼴 보기 싫어 “너, 우리 집에 오는데 잘못이야!”라는 못된 말을 지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토록 옹졸한 나를 빨갛고 둥근 눈으로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못마땅해하는 나를 두고 아이는 보란 듯이 다른 왕관앵무 네 마리와 어울렸다. 처음엔 낯설어 새장밖에 나오지도 못하더니, 어느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집안 곳곳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내 발등 위로 올라왔다. 제자리에서 꼬물거리던 아이는 날 올려다보며 날개를 퍼덕였다. 이때 처음으로 아이를 자세히 봤다. 말랑한 부리, 쳐진 날개, 짧은 머리 깃과 작은 몸. 내 검지 위로 올라온 아이가 날 지그시 쳐다보더니 고갤 숙였다. 풉-. 다른 애들 보고 배웠구나. 볼을 살살 쓰다듬어 주자, 아이는 ‘꾸르륵’하고 기분 좋은 소릴 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나에게 왔다. 나는 가시 깃이 덜 풀린 머리를 꼼꼼히 긁어주며 말했다.

 

“야, 너 ‘두부’ 할래? 두부.”

이름을 가진 후, 두부는 더 기세등등해졌다. 보이는 것마다 물어뜯고, 자기 자리를 침범하는 다른 왕관앵무에게 털을 부풀리며 위협하기도 했다. 두부는 언니 말만 듣는다며 동생이 입을 삐죽 댔다. 그 말에 나는 기뻤다. 가족 중 오직 내 어깨 위에만 올라오는 두부가 기특하면서도 귀여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름을 정성 들여지어 줬다면, 두부는 지금도 내 옆에 있을 거라고.

 

그날도 그랬다. 이별은 예기치 못한 사고처럼 갑자기 들이닥쳤다. 그래, 사고였다. 바뀌는 계절을 맞이해 대청소를 한 부모님이 환기한다고 대문과 거실문을 반쯤 열어두었는데, 그 틈을 타 검은 고양이가 들어왔다. 소릴 지르는 왕관 앵무새들 속에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두부를 물었다. 놀란 엄마는 검은 고양이를 잡았고 아빠는 두부를 빼냈다. 검은 고양이는 도망쳤다.

 

연락받고 급하게 달려온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는 두부를 두 손 위에 올렸다. 날 알아본 것인지 두부는 고갤 숙였다. 평소처럼 이마와 볼을 긁어주었다. 두부는 눈을 감으며 ‘꾸르륵’ 소리 냈다. 내 손길을 느끼던 두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새장 안 노란 횟대 위에 여전히 그 아이가 있을 것 같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부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검은 고양이를 한 번이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싶어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만나면 원망 섞인 말을 퍼부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내가 매일 밤 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너한테 유독 사랑 많이 받았잖니, 두부는 좋은 곳에 갔을 거다. 괜찮을 거야.” 엄마의 위로에 두부에 대한 기억은 더욱 선명해졌다. 말이 씨가 된 게 분명해. 두부가 온 첫날에 그딴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날 내가 외출하지 않았더라면 평소와 다름없이 횟대 위에서 졸던 두부가 내가 건네는 인사에 눈을 뜨지 않을까.

 

두부가 죽은 후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새장 안에는 여전히 노란 횟대와 솜깃털이 남아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당한 것뿐이라고. 단지, 그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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