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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Jul 29. 2024

앵무새 실종 일지


7월 27일 오전 9시


만두가 날아갔다.

삼 년 전 공장에 넘어가거나 폐사될 뻔한 아이를 구했다. 흰 얼굴의 왕관앵무새는 ‘만두’라는 이름을 얻고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새를 파는 가게에선 다른 힘 있는 애들에게 밀려 밥도 잘 못 먹어 몸이 잘 자라지 않았다. 꾀제제하고 안타깝고 안 쓰러운 새였다.

삼 년 동안 이쁘게 키우던 아이는 그렇게 날아가 사라져 버렸다.

거실문이 열린 틈을 타서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오전 9시 10분~30분


미아조 발생. 골든타임 한 시간.

씻지도 않고 옷을 대충 입고 나는 튀어나갔다.

골목과 옥상, 남의 지붕도 다 올라가 보았다.

작은 몸집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주택에서 살아서 주택이 밀집되어 있다.

그러니까. 여름이라 아무렇게나 자란 이름 모를 풀들도 숲처럼 자라 있어 어디에 만두가 앉았는지 혹은 떨어졌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제주도에 사는 동생에게 연락했다.

당근,  sns, 앵무새카페, 맘카페, 동물보호센터 등 만두 사진을 올리며 발견하면 연락 달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당근이 조회수가 제일 높았지만 연락은 헛된 소식이거나 애도의 말만 들려왔다.


오전 10시~12시


비가 온다.

기상하자마 뜨거운 햇볕아래 돌아다닌 나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비가 반가웠다. 시원했다. 웃기게도 그랬다. 만두는 지금 낯선 곳에서 물도 못 마시고 비를 그대로 맞고 있을 텐데 주인이라는 사람은 본인의 더위가 해소되었다고 좋아하는 꼬락서니라니. 진짜 웃겼다. 쏟아지는 비 아래 계속 돌아다녔다.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같은 앵무새 소리를 들려주면 좋다는 말에 유튜브에 왕관앵무소리를 계속 들려주었으나 만두의 소리는 고사하고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세 시간 동안 동네를 돌아다니는 날 보며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뭐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앵무새를 잃어버려서요. 혹시 이런 새 보셨나요?”

“아이고 어떡해... 보면 연락드릴게. 전화번호 알려줘요.”


아, 어떡해요. 이 날씨에. 죄송해요 못 봤어요. 우리 집에는 안 왔는데... 보면 알려줄게.


동네아주머니하고 전화도 교환했다.

처음 보는 동네 사람들, 서먹한 옆집 할머니도 전부 같이 걱정해 주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온정이 있었고 공감해 주었다. 한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애석한 일이다. 유감인 일이다. 그런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해가 내리쬔다.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버렸다. 속이 타들어간다. 정말 동네 곳곳을 뒤졌다. 구석이나 벽면 쓰레기통 어디에라도 떨어져 있지 않을까. 옷이 더러워지도록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만두가 원망스러웠다. 뭐가 부족해서 다른 형과 누나 앵무새들을 두고 혼자 나가버렸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이랬다면 하는 수많은 가정들을 생각했다. 베이글과 아이스 아메가 먹고 싶었다.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평소라면, 시원한 방에서 만두는 내 손에 다듬어 달라고 고갤 숙일 것이고 나는 그런 만두를 쓰다듬어 주면서 커피와 베이글을 먹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밥을 먹고 형과 누나와 방을 돌아다니며 놀고 낮잠 자다 다시 내게 다듬어 달라고 칭얼거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복실 한 털이 귀엽고 마음에 들어서 뽀뽀를 해줄 것이다. 태어난 지 삼 년밖에 되지 않은 만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흙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혹은 시멘트 바닥 위 더위에 서서히 죽어가면서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날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겁이 많은 왕관앵무는 자기도 모르게 숨었을 것이다.



오후 1시


더는 찾을 수가 없자. 더는 만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왕관앵무소리를 그렇게 틀고 다녔는데 내가 들은 건 매미소리와 야생새소리뿐이었다. 위를 쳐다보며 집에 걸어왔다. 하늘에는 이 시간에 참새와 비둘기와 직박구리가 이렇게 돌아다니는구나.


처음 알았다. 혹시나 나무나 다른 집 다른 빌라 아파트 난간에 앉아 있지 않을까 보았지만 만두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샤워했고 물을 마셨다. 내 몸을 들들 볶던 더위가 사라지자 솔직히 좋았다. 샴푸향기가 상쾌했다. 그리고 앵무새가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만두가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만두는 없으니까.


오후 3시


남아있는 앵무새들에게 물었다.

만두 어디 간 거 같아?

남은 애들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거나 눈을 감고 잘 뿐이었다. 그래도 아는 것 같았다. 평소같이 지내던 애가 없으니까 그 빈자리를 아는 모양인지 활발하게 놀던 애들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지쳤다. 그래서 불 꺼진 내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에게도 소식이 없다.

나는  ‘사체라도 찾았으면...’ 하고 잠들었다.


오후 7시


눈을 뜨니 아직도 오늘이다.

여전히 실종당일이란 사실이 날 괴롭게 했다. 아직 밤도 되지 않았다니 절망적이었다. 다음날이 아니라니. 눈물이 난다. 어둑해지면 더는 찾을 수 없다. 새들은 어두워지면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눈물이 난다. 야속하게도 만두는 자신이 어디서 뭘 하는지 연락하지 않는다.


밤 11시에 첫 식사를 했다. 먹고 싶었던 베이글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청도복숭아도 먹었다.

덥다고 선풍기까지 틀어놓고 나는 안전한 방에서 편안하게 먹었다. 이 점이 미친것 같다. 인간이란 참 우습지 고작 빵이란 걸 먹었다고 막혔던 머리가 맑아지고 힘이 나고 저녁까지만 해도 아팠던 몸뚱이가 서서히 나아진다는 게. 몸살인 줄 알았는데 몸살은 무슨, 진짜 멀쩡해서 어이없었다. 다만 많이 걸어서 다리만 조금 아팠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날 일요일 만두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일은 참 대단한 일이다. 지난날 다른 앵무새들이 날아가버리거나 죽을 때도 정말 슬펐다. 이런 말 잔인할 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눈앞에서 죽는 게 낫다. 적어도 죽었다는 사실이 각인되고 사체를 묻어줌으로써 제대로 떠나보낼 수 있다. 하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태는 참담하다.


지난날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날 때 사람들이 울던걸 그때도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공감한다. 푸바오로 인해 힐링받았다는 사람,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람, 우울증을 치료했다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쏟은 대상으로부터 치유받았듯 나도 그렇다. 반려동물 키우는 집이 1500만이라는 뉴스를 본 적 있다. 그들도 이렇지 않을까?


‘펫로스’ ‘반려동물 실종’ ‘반려동물 죽음’ 등 검색하며 하루종일 기사나 다른 사람 사연을 보았다.

배우 구혜선은 지난 4년간 6마리의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이어나가야 하는 자신을 되게 슬프게 말했다. 하루하루가 고되었다. 사람은 장례라도 치르고 애도 기간을 가지지 결국 동물이라서 혼자 속으로 삼키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야 했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은 회피했다. 떠났다는 사실을 회피했다는 거다.

떠나보냈으나 떠나보내지 못했다.

나는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었다. 나도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 어쩌다 갑자기 예전에 떠나보낸 다른 애들이 생각나니까. 그 애들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결국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스스로에 대한 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속마음이 뒤죽박죽이었으나 그 순간에도 나는 글이 쓰고 싶었다. 글을 못 쓸 줄 알았는데 안 쓰려했는데 개 같게도 나는 손가락을 놀리고 싶었던 거다. 사람마음이란 게 그런 것이다. 감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중한 게 한 순간에 사라졌는데 하루이틀 만에 마음이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겠는가. 그저 하루하루 무뎌질 뿐이고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갈 뿐이고 일할 뿐이다. 계속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웃고 괜찮고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괴로울 뿐이다.


나는 사실 희망적이었다. 왜냐면 다른 사람은 모란앵무새를 막 삼일 만에 찾은 경우도 있고 30시간 넘어 찾은 애도 있고 꼬박 하루 걸려서 찾은 애도 있다는 그 사연들이 내겐 아무래도 희망고문이었다.

그러나 실종 삼일 째인 오늘. 나는 결국 찾지 못했다. 집 근처에라도 바람을 타고 와 있을 줄 알았는데

만두가 보이지 않는다.


왜 하필 그 어린것이었을까. 만두는 왜 날아간 걸까. 밖이 궁금했던 걸까? 밖은 나가 본 적도 없으면서. 뭐가 궁금해서 가버린 걸까. 언젠가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영원히 곁에 있을 것처럼 키웠는데. 가족처럼 말이다. 어떤 대상에 애정을 쏟아붓는 일은 꽤나 힘이 든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가치 있다. 이를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마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러면 각자가 지키려고 하는 소중함과 가치관을 존중해 주면 된다. 고작 ‘새’ 라도 말이다. 누군가에겐 정말 소중한 생명인 것이다. 그냥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나는 그저 바랄 뿐이다.

만두가 만약 세상을 떠났다면 고통 없이 최대한 빨리 떠났길 바랄 뿐이고, 정말 만약 다른 사람에게 갔다면 우리 집 보다 더 좋은 곳에서 아주 행복하게 지내기를. 상실의 아픔은 시간이 언제나 그랬듯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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