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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Jul 08. 2024

카페가 체질

일한다는 즐거움


반년 전, 나는 퇴사를 했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어둡기만 했던 그때,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꿀이지만 답답했던 휴식이 끝나자 다시 움직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마음속 깊이 꿈틀댔다.

 

‘어디라도 가고 싶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 업계 특성상 내 나이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혼자 방구석에 있으니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원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그만큼 다시 돌아가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은연중에 스스로를 낮추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뭐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자면, 당장 샷을 내릴 수 있고 음료 레시피도 금방 익힐 수 있다. 또 손님 응대도 어렵지 않다. 다른 부수적인 일들도 다 할 수 있다. 그런 이상한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다. (이럴 때 경력이 도움 되는구나 싶었다.) 나는 역시 카페가 체질인가 봐.


일이라는 건, 솔직히 돈을 떠나 내가 재밌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잘하는 걸 하며 가늘고 길게 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며칠 동안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가짐부터 바꾸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나이도 경력도 자존심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신입이다. 나는 쌩초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일할 곳은 어디에나 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매일 어딘가로 나갈 수 있는 일정한 목적지가 필요했다. 집에만 있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는 나가는 게 맞는 사람이었다. 비록 집순이였지만, 일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왜 사람들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곳, 그러면서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를 선택해 주었으면 했다.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좋을 텐데. 냉정한 사회는 거저 돈을 주지 않는다. 제대로 자기 몫을 해내야만 그 대가로 돈을 준다. 돈은 단순히 생계 의미만 가지는 게 아닌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돈을 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주 적은 돈이라도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곳에서 내 몫을 다하고 싶었다.


참 우습게도 내가 깊이 고심했던 지난 며칠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한 곳이 있던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오랜만에 잡은 포터필터의 무게가 손끝에 느껴졌다. 갈려 나오는 원두의 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귀에 들려왔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레시피로, 처음 보는 식자재로 음료를 만들고 빵을 굽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일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매일 어딘가에 나가 새로운 경험을 쌓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이제 나는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재밌고 출근하는 발걸음이 즐겁다. 이 길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모른다. 사실 언제까지 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맞는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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