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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Oct 19. 2023

괜찮은 삶

날카로운 경계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삶


 박보나 작가의 책을 읽다가 예전에 알던 한 미술가가 떠올랐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다. 이제는 모르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관계가 끊어져서 아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어져서 다행인 사람도 있다. 반면 끊어져야 하는데, 끊어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끊어졌다는 것은 경계가 생긴 것이고, 지금은 모르는 사람인 이유는 시간이 흘러 점점 그 경계로부터 멀어져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 미술가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미술가의 작업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항상 평범한 재료를 선택해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자본의 논리보다는 자신이 정한 삶의 논리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예술세계가 그의 삶과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이고 지나친 과장이다. 어쩌면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가 다른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순간 느낀 짧은 섬찟함은 나도 그렇게 구분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어디서 감히 나와?

 나는 ‘어디서 감히’의 상대가 되는 사람도 예술가였고, 함께 자주 술을 마시던 관계였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있었고, 둘이 한 묶음이 되었다. 그 순간 그는 그 사람과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를 표현하려고 열중했다.

 다른 가치로 등급을 매긴 것이다. 그 다름은 졸업한 학교였다. 나도 여전히 알량한 계급의식으로 무의식적으로 구분할 때가 많지만, 자의든 타이든 조금씩 희미해졌다. 이유는 내가 속한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어느 학교에 나왔는지 물은 사람도 없고, 물은 적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절대로 희미해지지 않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도 있다. 일명 스카이 대학이 여전히 그들이 세상을 나누는 기준이다. 졸업한 지 꽤 지났을 텐데도 말이다. 인생에서 짧은 기간 4년일 뿐인데도.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4년을 위해 20살까지 힘들게 공부했다고. 그러니 더 문제다. 그 4년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그 4년 이후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다니. 내가 그런 좋은 대학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 좋은 대학을 나왔으면 내세웠을 거리고. 나도 그럴 것 같다. 그러니 정말 다행이다. 나는 그런 좋은 대학에 나오지 않았고 부끄러워서든, 또는 자랑할 수 없어서든, 어느 대학에 나왔는지 이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계급을 나누는 기준으로부터 나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실패한 삶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계급을 나누는 사회가 성공한 사람들의 세계일 수도 있지만, 나는 높고 낮음이 많지 않은, 적당히 적당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내 삶은 괜찮은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를 때면, 성공한 삶은 아닐지라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 중에 하나다.


 날카로운 경계가 많지 않은 부드러움 속에서 살고 싶다. 내가 스스로 삶을 부드럽게 만들 수 없다면, 부드러운 환경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환경에 살려면 내가 날카롭지 않아야 한다. 어떤 것이 먼지인지는 선명하지 않다. 내가 환경을 날카롭게 생채기 낼 수도 있고,  날카로운 환경이 나를 생채기 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둘은 떼어낼 수가 없다. 나와 환경이 부딪혀도 상처가 나지 않는 상태.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잘 살고 있느냐의 질문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를 생채기 내지 않고, 누군가 나를 생채기 내지 않은 관계, 장소,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의 총합이다. 이 중 하나, 또는 둘이 틀어져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삶이 어찌 충돌이 없을 수 있겠는가.

 부딪쳐 날카로움이 번뜩이는 경계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삶. 내가 먼저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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