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이었다. 퇴근길에 만난 제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또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지만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쌀을 씻고 저녁을 준비했다. 평소보다 말이 좀 없긴 했지만 그밖에 특별한 건 없었다. 그러다가 자정이 조금 지나자 제이는 서재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서재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서재에 들어가 보니 제이는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력서를 읽는 것이 내 직업인데 정작 아내의 이력서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내가 어떤 이력으로 살아왔는지를 눈으로 되짚어가다 보니 아내가 조금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사진 속의 아내는, 이력서 사진이 대개 그렇듯이,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거 언제 찍은 거야?”
“모올라. 나가아아.”
제이는 옛날 사진을 보여주게 되어 난감하다는 듯 발그레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웃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여보, 면접할 때 첫인상이 정말 그렇게 중요해?”
제이가 화제를 돌렸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럼 채용 담당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는 어때?”
“당신이야 합격이지.”
아내로서 말고 지원자로서 어떠냐고 묻는 거라며, 제이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로서 그렇다고 한 것도 아닌데. 아, 물론 아내로서도 당연히 합격이다. 애초에 내가 합격 여부를 논할만한 자격이 되는지는 몰라도.
결국 올해 초에 제이는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말이 좋아 던진 것이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이의 상사는 오랜 시간 동안 제이를 괴롭혔다. 몇 년 전부터는 그 수준이나 양태가 거의 노골적이었다. 내가 볼 때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 관계라 시간이 갈수록 더 꼬이기만 한 것 같다. 아무튼 이제는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고 제이도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 상사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견딜만했을 것이다. 상사니까. 어쩌면 잘못 꿰인 관계라느니 엉망이라느니 하는 것에 대해서도 거의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쯤 대출을 권유하는 호객 전화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꺼버리면 된다고. 무신경하게.
제이가 사직서를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근길에 장미꽃을 한 다발 샀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제이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었지만 어딘가 복잡한 표정이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아무 말 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제이의 어깨가 힘없이 떨렸다.
수고했어, 그동안. 손에 들고 있는 빨간 장미꽃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제이는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집에 도착하면 내가 다시 한번 제대로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았다.
수고했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