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연 Aug 12. 2018

때론 말실수가 먼저 마음을 알아챈다

'또 봐'라고 말하려 했는데 '고마워'라고 말해버렸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의 만남이 오랜만일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친구와의 만남 자체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고등학교 친구야말로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본 적 없는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의 준말) 같달까.
어제 만난 친구는 그중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뒤늦게 미술대학을 가겠다고 결심, 미대 입시를 준비한 친구. 흔하지 않아도 특별하지도 않은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가 나온 고등학교가 외국어고등학교라는 점을 알면 꽤나 특별해진다. 모두가 비슷한 길, 그것도 명문대라는 뻔한 목적을 향해 달리는 학교에서 자기만의 미감을 찾고 연마하는 일은 쉽지 않았으리라. 나도 그랬다. 확실한 목적이 눈앞에 있건만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저항하지도 적응하지도 못하고 고단함과 고립감에 자주 둘이 가만히 계단에 앉아 있었더랬다. 그땐 그랬다. 지금 내가 거치는 시기의 의미도, 감정을 표현할 말도, 이럴 때엔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몰랐다. 그 탓에 몇 번 투닥대기도 했다. 그때 주고받은 긴 문자 메시지가 아직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래도 단지 비슷한 지점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곁에 앉아 있을 수 있었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곤 했다.
친구는 다행히 한 번에 미대에 입학, 도예를 전공하고 지금은 독일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친구에게 뒤늦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동창을 만나면 으레 그러하듯 다른 친구들의 안부도 건너 물으며 새로 안 소식들에 우리도 벌써 이런 나이가, 요즘 대학생은 00년생이고 주민등록번호가 3이나 4로 시작하더라 따위의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동창은 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는 공부 못할 것 같다며 내 평생의 공부 에너지는 고등학생 때 다 썼다고 손사레를 쳤다. 너 또 그 소리네, 친구는 웃었다. 그랬구나. 내 입버릇이구나.
고등학생 때 대부분의 웹사이트 계정 비밀번호가 경주마365였다. 어디선가 경주마는 앞만 보고 달리도록 눈 옆에 가림막이 달려 있다는 말을 읽고는 지금의 나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가치는 다 미뤄둔 채 오직 대학만 보고 달려야 하는 수험생. 매 모의고사마다 교실 앞에 등수가 붙고, 노트북이 필요한 과제가 흔하며, 친구의 DSLR로 함께 벚꽃 사진을 찍는 MB 정권의 특목고. 경쟁이 합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되어버린, 덕분에 선생도 학생도 혼란스러웠던 고등학교.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에게 '함께하는 광장', '거래하는 시장', '사활을 건 전장' 중 고등학교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고르도록 했다. 한국 응답자의 80.8%가 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처럼 느낀다고 답했다. 중국은 41.4%, 일본은 13.8%였다. (출처: 무한경쟁이 불신 키우는 한국사회...대학생 81% "고교는 전쟁터"​, 연합뉴스, 2018.08.02)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마저 고등학교 시절은 미화할 수도 없다는 거겠지. 우리는 곧 외국 프레피 드라마를 얘기하며 도박도 마약도 담배도 없이 외고를 다닌 그때의 우리들은 정말 대단했다며 웃었다. 여기가 외국이라면 이미 총기난사사건이 터지고도 남았어. 맞아, 학생이 밤에 담 너어 답안지 훔치는 사건도 일어났잖아. 맞다, 그런 일도 있었지. 지금 보니 학생들이 담배 피는 건 다 그런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러네 킥킥킥.
슬슬 대화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정리할 때를 알아챈다는 점에서 고등학생 때와 달랐네.) 지금 헤어지면 1년 후에나 보겠다. 독일 놀러 와. 아, 내가 차마 그 생각은 못했다. 놀러갈 수 있게 열일하고 있을게. 손 흔들며 '또 봐'라고 말하려 했는데 '고마워'라고 말해버렸다. 지난한 시간을 지나 힘들어하던 모습대로 여기까지 온 친구를 향한 마음이 무심결에 튀어나왔나 보다. 여전히 고민하고 힘들어하는데도 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버스를 타고 생각했다. 친구가 '나다운 나'로 사는 듯해서. 그럼에도 아직 무사해서. 자꾸 무뎌져야만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세상에서 무뎌지기보다는 단단해져가고 있어서. 무디지 않은 채로 무르면 쉽게 다치지만, 단단해지면 조금씩 견딜 만해지니까.

사실 요즘 많은 단단한 사람이 떠나 무서웠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부끄럼을 느끼지 못하는 무딘 사람이 오래 살아남고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빨리 가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세상에 내가 쉽게 고개 숙여버리면 어쩌지, 불안했다. 그런데 친구를 보며 나도 잘 견디어 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갈 수 있는 곳까지 무뎌지지 말고 감정을 잘 벼르며 살자고. 이런 우리라도 어쩌면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몰라. 내일도 모레도 무사할지도. 그런 탓에 오랜만에 만나 대체로 웃으며 때때로 낮은 목소리로 비슷한 고민을, 아픔을(샤이니 종현 이야기를 꽤 길게 했다.), 그리고 어쩌면 미래를 나눌 수 있음이 고마웠다. 우리가 여전히 친구라는 게.

때론 말실수가 먼저 마음을 알아챈다. 그런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워진 피프티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