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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Aug 27. 2018

이제껏 보지 못한 여성 킬러의 등장

구병모 장편소설 〈파과〉



파과

구병모 / 위즈덤하우스

14,000원


추천 키워드


#영화같은

#여성서사

#킬러물

#늙어감

#SNS입소문


Review

<60대 여성 킬러가 나타났다>


새롭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보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는 요즘,

뒤늦게 트위터에서 입소문을 타 2018년에 리커버된 소설이 있다. (출간: 2013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유명한 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 『파과』이다.


<파과>는 '왜 모든 여성 킬러는 젊고 예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파과』의 주인공 조각(爪角)은 방역업체로 불리는

청부살인 에이전시에 소속된 65세 여성 킬러다. (물론 조각은 가명이다.)

하지만 단순히 노년 여성을 그리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정상 가족(가사노동자)에서 벗어나 있을 수밖에 없는 킬러로서

조각이 마주하는 일상적인 편견과 외로움,

그리고 강한 면모를 함께 그려 복잡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조각은 소설 내내 노년 여성, 특히 몸을 쓰는 업자로서

늙어가는 몸을 받아들여야하는 복잡한 심정을 내비친다.

짓무른 과일 혹은 흠집 나서 팔기 어려운 과일을 뜻하는

파과(破果)를 보고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조각 스스로를 파과와 비슷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얻은 교훈,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는 마음으로 지나친 시간과 관계들.


냉장고 안쪽에 밀어둔 밑반찬 뚜껑에 성에가 끼고 AS 기사가 몇 차례 다녀갈 때마다 어머님 이제 부품도 단종되고 바꾸실 때 됐는데 좀,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냉동실 얼음이 다 녹아버릴 정도라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소음도 견딜 만하고.
 부품도 단종되고.
 고장. 단종.
 이제 그만 좀 버리세요.
 이거 더 이상 못 버틴다니까.
 교체.
 조각은 냉장고 안을 찬찬히 살핀다. (중략)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집에 와서 그녀는 꼭 한 개를 먹었을 뿐이고, 그 뒤로 잊어버린 모양이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그러나 조각은 처연해하기보다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집에서 죽으면 반려견 무용에게 먹힐까 고민하지만

자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서비스 직종의 사람들에게

매번 "저 그쪽 어머니 아니에요."라고 고쳐주고,

몸 생각해서 총기를 가벼운 것으로 바꾸라는 동업자의 말을 뒤로 하고

익숙한 무기가 좋다며 콜트46을 고집한다.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지하철에서 임산부에게 꼬장부리는

노인을 단칼에 응징하기도 한다. (유쾌 통쾌 상쾌!)

현실에서 못 이룬 복수극을 소설에서 맛 볼 수 있달까?

무엇보다 소설 속에서 살인당하는 이는 모두 남성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책의 재미와 감동 점수가 높은 이유는,

노년 여성과 중년 남성을 모성애가 아니라 연모와 사랑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청부살인 중 느낀 연민으로 인해 실수해버린 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방문한 동업자 관계의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중년의 의사 강 박사.

조각은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연민을 느껴 여지를 남겨버린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강 박사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데... (두둥!)

여기에 다 적지 못하는 디테일과 반전은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만연체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장벽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리얼리즘보단 판타지스러운 한국소설이 궁금하다면,

그리고 어머니가 아닌 새로운 노년 여성 캐릭터가 보고 싶다면 강력추천!

파과라는 은유로 엮인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하고

가상 캐스팅을 해가며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책 속 숨은 TMI

구병모 작가는 냉장고에서 짓무른 복숭아를 보고 <파과>라는 제목과 처음, 중간, 마지막 줄거리를 떠올렸다.

출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27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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