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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cos Oct 05. 2021

수 천년 인간사의 단서 ; 주역


최근 동양철학을 접하다가 주역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자가 없던 시기 부터 내려와서 공자가 집대성하여 수천 년 후에 서양의 칼융이나 아인슈타인도 심취할 정도라니 궁금했다. 예전엔 중국의 토템신앙을 바탕으로한 점법 같은 인상에 거부감이 들었었는데, 하나하나 알아갈 수록 놀라운 체계임을 깨닫게 되었다.


점의 기원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고대 중국왕실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거북이 등껍질에 점칠 내용을 새겨 불에 구우면 갈라지는 모양새를 보고 길흉을 판단했다고 한다. 수천 년간 점쳤던 기록들을 모으고 분류하는 과정을 통해 복희씨가 괘라는 부호를 그려서 정치·경제를 운영하는 수단으로 삼다가 3천 년전에 문자가 생기자 주나라 문왕이 '괘상'에 설명을 붙이고 그 아들 주공이 괘상의 부분인 '효'에 대한 설명을 붙였다. 괘와 효라는 것이 변하고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바꿀 역' 자를 써서 易이라 하고, 그 괘·효를 설명한 것은 글이기에 經이라 하여 '역경' 이라고 한 것이며, 주나라 때 완성되었으므로 '주역周易' 이 된 것이다. 그 후 공자께서 주역 공부에 몰두해 가죽으로 묶은 책이 3번이나 끊어져 '위편삼절' 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심오한 탐구를 하였는데, 이를 집대성시켰고 중국 유학의 경전 '사서삼경' 의 반열에 오르도록 일조하였다.


이처럼 수천년간 축적된 방대한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사에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64가지 (8괘X8) 범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래서 내가 처한 상황이 64가지 길 중 어디에 속하며 몇단계에 있는지를 판단하면 길흉과 존망, 진퇴 여부를 가늠하게 되어 거기에 맞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각각의 괘에 있는 6개의 효까지 감안하면 384개의 인식과 고찰들이 숨어있다. 조선시대 율곡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주역을 익혀놓으면 내가 놓인 상황의 기미를 파악하여 다가올 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좋고 나쁘고를 단정적으로 얘기해주진 않는다. 음이 양으로 변하고 빛과 어둠이 교대하는 것, 그 변화를 포착해 설명하는 것이 주역이기에 변화의 여지를 준다. 빛이 어둠을 만나지 못하면 밝음을 알 수 없듯이, 빛과 어둠 둘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서로 의지하는 동시에 대립한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사에 비추어봐도 힘든 시기가 미래에 발전을 위한 도약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성공에 취해 있는 시기가 나중에 독이 될 수도 있다.


한 예로 '중천건괘' 에서는 효의 위치에 따라 잠언이 달라진다. 상上효의 효사는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라서 후회함이 있으리라' 로 너무 높아 교만해짐을 주의하라며 날아오른 용은 내려오는 것이 길함을 알려주고 있다. 반면, 초初효에서는 '잠긴 용이니 쓰지 말지니라' 로 아직 미숙한 상태이므로 못 속에 잠겨 있는 용처럼 조용히 때를 기다리라고 한다. 현대인에겐 여러 이야기를 통해 체득된 익숙한 교훈이지만, 이미 수천 년전부터 점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서양으로도 전파되었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변화의 서 the book of change '로 불리웠다. 심리학자 융이 주역에 심취하여 주역의 8괘에 기초해 인간의 성격을 나누고 자신의 심리학 체계를 강화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주역 점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 '동시성 원리' 로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는 인과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인과적 연결' 을 얘기한다. 살다보면 심리적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에 우연스런 일을 맞닥뜨리곤 하는데, 이것도 단순 우연이 아닌 개인의 무의식과 연관된 결과일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의 세계도 우주 전체 차원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뭔가로 연결되어 있지 않나 싶다.


한 치 앞도 알수 없는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당면한 상황의 판단 조차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은 무언가에 의존하게 되고 종교나 무속인을 찾게 된다. 주역이라는 것은 무언가에 의존하게 만들지 않고, 수천년 인간사를 패턴화된 기호로서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어느정도 괴리가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화 시각으로 풀어낸 다양한 책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익혀나가면 삶의 지혜를 얻는 데에 도움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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