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알코올 그리고 고양이
그는 대학 동기였다. 신입생 시절엔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밥을 먹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못한 사이였다. 오래 보지 못했는데도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하다는 게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한참 망가져 있었고, 익숙한 얼굴 하나만으로도 기댈 곳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수업을 듣게 된 덕분에 과방에서 자연스레 함께 과제를 했다. 그렇게 다시 관계가 이어졌다.
“요즘 어때?” 과제 자료를 정리하며 그가 물었다. 그냥 그래, 내 짧은 대답에 동혁은 눈치를 챈 듯했다.
“그 형이랑 헤어졌어?”
“응, 겨울에.”
“왜?”
“그냥, 안 맞으니까 헤어졌지. 너는?”
“나?”
“오동혁, 너는 왜 헤어졌냐고.”
“나도 똑같지. 안 맞으니까. 그럼 연락 안 해? 친구로 지내도 되잖아?”
“말이 돼? 어제까지 키스하고 몸을 섞던 사람이랑 친구를 한다고?”
“안되나?”
“너는 친구로 지내?”
“몇 명은?”
“하, 그럼 그 정도의 마음으로 사랑한 거지. 얼마나 만났는데?”
“글쎄, 한 두 달 만났나?”
“그게 사귄 거야? 그냥 썸이었다고 해.”
“그러면 나 모쏠인데?”
“심각하네. 멀쩡하게 생겨선.”
“하하. 이거 다 하고 뭐 할 거야?”
“술 마시러 갈 거야.”
“누구랑?”
“혼자.”
“같이 마셔.”
“좋아.”
우리는 꽤 자주 대학가 골목의 간판도 없는 지하 칵테일바에 갔다.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바텐더는 단 한 명뿐이었다. 열 개 남짓한 테이블은 서로의 대화를 숨길 틈조차 주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옆자리의 속삭임까지 훔쳐들을 수 있는, 마치 개미집 관찰 키트 같은 공간이었다. 물담배 냄새가 은근히 퍼졌고, 싸구려 칵테일은 몇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곳의 분위기에 취하곤 했다. 구석에는 늙은 고양이가 늘 몸을 웅크린 채 손님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끔은 사는 이야기를 했고. 가끔은 서로의 휴학기간을 추억했다. 또 어떤 날은 서로의 연애를 반추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마주 앉아 잔을 부딪히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의 시선이 농담보다 오래 머무는 때가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술자리의 착각인지,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불분명함이 우리를 다시 그 바의 계단으로 이끌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