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홍염살 13화

스물셋, 동혁

#우정과 사랑

by young

좁은 공간 안에서도 우리 사이에는 항상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동혁은 잔을 돌리며 얼음이 녹는 소리를 들었고, 나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척했다. 물담배 연기가 우리 대화 사이사이를 스며들었다. 이날은 서로 지난 연애의 시작에 관해 물었다.


“고백받거나 아니면 고백할 분위기를 만들길래 고백했어.”

“고백할 분위기? 그게 뭐야?”

“음, 고백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있어.”

“그러니까 네 연애가 그런 거야. 애매한 마음으로 시작하니까. 너무 쉽게 기대하고 쉽게 실망하는 거지.”

“그런가?”

“응, 그렇지.”


한바탕 웃음이 가라앉자,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웃음이 남긴 잔열이 공간에 남았고, 그 뜨거움 위로 차갑게 침묵이 깔린다. 서로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입술은 닫혀 있다. 아무도 먼저 칼날 같은 말을 꺼내려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빙글빙글 꼬리를 휘두르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손끝으로 닿는 부드러움이 마음의 두근거림을 가려줄 리 없지만, 괜히 꼬리에 집중하듯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심장은 점점 더 요란하게 울리고, 침묵은 점점 더 답답하게 부풀어 오른다. 고백할 듯, 안 할 듯. 공기 속에 뜨거운 것이 뭉근히 끓는다. 서로의 숨결이 너무 가까워, 말끝마다 체온이 스며든다.

결국 견디다 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고백할 분위기인데 왜 나한텐 고백 안 해?”


내가 먼저 비집고 나온 말은 농담처럼 던져졌지만, 웃음기는 없었다. 차라리 불쑥, 진심이 삐져나온 것에 가까웠다. 심장은 이미 대답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차분하게, 하지만 한 박자 늦게 내 말에 대꾸했다. 망설임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넌 헤어지면 친구는 안된다며.”

“안 헤어질지도 모르지.”

“글쎄, 내 연애는 늘 그런 식이 었어. 알려줬잖아. 백일을 넘기면 다행이라니까? 결국 사귀면 너랑도 헤어질 거야.”

“지금도 우린 친구라기엔 너무 애매하지. 나는 이런 관계는 싫어. 우정인 척하는 사랑이야.”

“우정도 사랑이지.”


동혁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마치 방패처럼 툭 내던진 말. 하지만 그 얇은 방패 너머로 그의 불안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더는 회색 지대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선을 긋든, 넘든,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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