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쟁이
동혁과의 관계가 끝나고, 친구와 술을 마신 어느 날이었다. 사주를 보자는 다경의 말에 우리는 휘청거리며 작은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낡은 향 냄새와 오래된 책 냄새가 뒤섞여 들어왔다. 벽면에는 이름 모를 한자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다 낡은 방석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한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세 사람이 마주했다. 요즘 남자친구와 문제가 있다며, 다경은 자신이 먼저 사주를 보겠노라 했다. 나는 별 흥미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큰 기대는 없었지만, 어떤 소리를 할지 궁금했다.
“언니, 언니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아야 하는 사주야.”
“헉, 맞아요!”
다경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사주쟁이는 그런 반응에 더욱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다. 나는 팔짱을 끼고 지켜보며 피식 웃었다. 저런 말은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말 아닌가. 마치 혈액형으로 성격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다경과 사주쟁이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나는 내 연애사를 떠올렸다. 그러던 내게 갑자기 화살이 돌아왔다.
“현아, 너도 한번 봐.”
“나? 나는 별로...”
“왜애, 재미로 보는 거지. 내가 내줄게. 사장님, 얘 것도 봐주세요.”
“언니, 생년월일이랑 태어난 시간은?”
“시간은... 모르는데, 잠시만요.”
나는 얼른 지갑을 꺼내는 다경을 말리지 못했다. 얼떨결에 종이에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적어 건넸다. 순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생시까지 말해버렸다는 사실에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사주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얼굴을 훑었다. 나는 괜히 긴장했다. 뭔가 들키면 안 될 것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나를 빤히 보던 사주쟁이가 첫마디를 뱉었다.
“언니는 남자가 많네.”
나는 잠시 멍해졌다.
“네? 없어요.”
“없어? 이상하다.... 올해도 몇 명 있었을 텐데?”
말은 단호히 부정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순간 동혁을 비롯해 내 곁을 스쳐간 얼굴들이 떠올랐다. 한때 잠깐 얽혔던 인연들, 이름조차 희미해진 사람들. 그 모든 얼굴들이 파도처럼 지나갔다.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농담처럼 대꾸했다.
“다 저만 모르는 남잔가 보네요.”
다경은 옆에서 킥킥 웃었고, 사주쟁이는 무슨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좁디좁은 공간 안에 묘하게 낯 뜨거운 공기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