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홀리데이
“적어도, 나한텐 아니야.”
마지막 말을 내뱉고 나니, 두 눈이 저도 모르게 젖어드는 듯하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 얼굴에 덧칠된다. 동혁은 잠깐 말을 멈췄다. 그의 눈이 내 얼굴을 훑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다시 열려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나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이미 늦었다. 대화가 끝난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말들이 바늘처럼 심장을 찔렀다. 나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끝내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웃으며 넘길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말이 끊긴 자리엔 음악만 흘렀다. 그 음악이 우리를 문밖까지 밀어냈다.
“갈까?” 하고 내가 말하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 대신 늘 그렇듯 짧은 몸짓이었다. 우리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바깥으로 나와서야 뜨거운 여름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몇 걸음 걸으며 나는 그에게 뭔가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하철역 2번 출구 앞 횡단보도까지 걸어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가볍게 부딪히는 어깨들, 청춘의 웃음소리, 늦은 밤의 흥분이 묻어나는 대화들이 귀를 스쳤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움 사이에서 우리 사이만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데려다줄까?” 하고 그가 물었지만, 나 역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동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몸짓이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가 멀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도, 눈길을 피해도,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힐끔거리는 내 시야 끝에 스치는 그의 뒷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동혁은 다른 남자들처럼 집 앞까지 따라오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게 늘 아쉬웠다. 혼자 걸어가는 길에 바람은 더 크게 들리고, 발자국 소리마저 공허하게 울렸다. 몇 걸음만 더 함께해줬으면 했지만, 그는 한 번도 내 곁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동혁의 뒷모습은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멀어져 갔다. 그 거리만큼의 공백이 마음속에도 생겨났다.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습관처럼, 우리의 관계도 언제나 그렇게 담담하게 멀어졌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가 허공에 흩어지고, 그 후로 그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답장하지 않았다.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휴대폰은 조용했고, 내가 먼저 손을 뻗을 일도 없었다. 그렇게 관계는 특별한 사건도 없이 사라졌다. 드라마틱한 말이나 눈물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더 오래 남았다.
그 후 단골 술집을 찾는 일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낡은 바 스툴, 희미한 조명, 레몬 껍질이 뜬 잔. 그런 사소한 것들이 괜히 불편해졌다. 결국 나는 수고스럽게 다른 술집을 찾아야 했다. 친구들이 그 근처 카페나 술집을 제안할 때마다 “거기 말고 다른 데 가자”며 핑계를 댔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앉아, 이름 모를 술을 마시면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디를 가든 그와 함께 앉았던 테이블이 떠올랐다. 빌리 홀리데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겹쳐 흘렀다. 다른 바에 앉아 있어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로 되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