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홍염살 11화

스물, 수현

#허기진 사랑의 가해자들

by young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땀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천천히 식어갔다. 막 입을 맞추던 입술이 이제는 서로를 찌르는 칼끝 같았다. 나는 눈을 피하지도 못한 채, 그가 다시 웃을까 봐 두려워 가만히 숨만 삼켰다. 시계 초침 소리만 공간을 채웠다. 방 안의 공기는 눅눅하게 가라앉아 숨이 막힐 정도였다. 침대 위에는 아직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었다. 막 사랑을 나눈 자리에서, 우리는 가장 잔인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만 얇게 얽힌 침묵 속에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직감했다. 불이 꺼진 무대 위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처음엔 그가 관객이자 배우였지만, 마지막엔 나 혼자 추한 막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이라 부르기엔 허기졌고, 이별이라 하기엔 질질 끄는 미련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두 달을 더 매달렸다.

이별로부터 며칠 후. 끝내 그의 입에서는 듣지 못한 말들을, 엉뚱한 입을 통해 전해 들었다.

“최수현은 너랑 계속 헤어질 거라고 말하던데?”

“언제부터?”

“글쎄 오래됐어. 한 일 년쯤?”

“왜 아무도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형이랑 너랑 합의가 된 일인 줄 알았지. 정리된 줄 알았는데.”

“말도 안 돼. 이별을 합의해? 미리 약속이라도 하고? 우리 몇 월 며칠 한강둔치에 앉아서 헤어지자. 이렇게? 장난해?”

“음. 미안해.”

“너도 똑같아.”

“아니야. 괜한 말을 했어.”


창밖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커튼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없었던 건지, 내가 숨조차 죽이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말보다, 그 말을 전하는 친구의 눈빛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나만 몰랐다는 게, 그게 가장 비참했다. 아니, 어쩌면 나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끝났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가 무너질까 봐 외면했을 뿐이다.

처음엔 화가 났다. 왜 아무도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냐고, 왜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냐고. 그런데 곱씹을수록 알겠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이 허기진 사랑이 이미 끝났다는 걸.

다만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걸 견딜 수 없어서, 껍데기만 남은 사람을 붙들고 있었을 뿐이다. 혼자라는 건, 그때 나에겐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만 숨을 쉴 수 있었다. 설령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내가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착각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마음을 남들한테 고백할 수는 없었다. ‘나는 혼자가 무서워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내가 바보 같은 여자, 사랑에 눈먼 여자로 보이는 게 나았다. 그래서 일부러 그가 내게 던진 가장 모진 말만 골라 전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니까. “그 남자가 나를 이용만 했어.”라고 말하는 편이, “나도 그 남자를 이용했어.”라고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 둘 다 가해자였다는 거였다. 그 사실을 외면한 채, 나는 스스로를 속이며 버텼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기 위로였다.






스물, 수현 * 허기진 사랑의 가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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