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하 Nov 21. 2020

자기 발전의 시작, 남 탓 말고 내 탓


<실패를 자산으로 만든 4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여기 두 명의 대표가 있다.
먼저 J 대표의 처절한 실패 스토리를 들어보자.

 J 대표는 1997년 선박 관련 부품회사를 창업한 후 연평균 7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싶었던 그는 평소 신뢰하던 직원에게 경영 전반을 믿고 맡겼다. 이는 큰 화를 초래했다. 해당 직원은 J 대표가 지방에서 연구에만 매진하는 사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몰래 다른 회사를 차려놓고 거래처를 본인 회사로 모두 돌려놓았다. J 대표가 서류 결재를 위해 회사에 정기적으로 출근할 때 대표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는 모두 조작된 문서였다. 무려 2년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계획범죄로 J 대표는 약 10억의 빚을 떠안으며 폐업에 이른다. 사무실과 공장을 모두 팔아도 4억 원의 빚이 남았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J 대표는 믿었던 직원에 대한 배신감으로 매일 지옥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여기 K 대표의 성공 스토리를 살펴보자.

 K 대표는 2014년 무윤활 회전축 밀폐장치 전문기업을 설립했다. 관련 분야의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전 세계 특허를 확보했다. 현재 자체 생산한 제품을 삼성과 LG 등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또한 밀폐장치 분야 시장을 주도해왔던 일본 현지 업체들을 모두 제치고 파나소닉에 자사 제품을 직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약 100억 원에 달했다.

 K 대표는 말한다. 제품의 경쟁력은 기술의 ‘우수성’과 ‘차별성’에서 비롯되고 이 두 가지를 확보하면 전 세계 어디서든 상품을 팔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사업의 핵심은 경영이라고 역설한다. 아무리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업체라 해도 사업은 결국 관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JK는 경영관이 확연히 다르다. 결과적으로도 J는 완벽히 실패했고 K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J의 마음은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하지만 K는 비전과 긍정으로 가득 차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할까?

 놀라운 것은 JK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다. J는 4년 후 K가 되었다. 그렇다면 4년간 J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딱, 생각 하나 고쳐먹었다.>

 사업 실패 후 멈춰진 암흑 같은 시간. J 대표는 3년간 수돗물을 먹으며 전전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하는 척하며 물을 마음껏 먹었다. 그렇게 두 끼는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사업이 망한 것도 충격이지만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불현듯 그 직원을 해치고 본인도 생을 마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정부의 ‘재기지원’ 프로그램을 알되었다. 반신반의하며 참여하게 된 한 달 간의 재기 교육을 통해 J는 지난 실패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단 한순간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직원을 생각하며 ‘용서’라는 말을 떠올렸다. 아니 오히려 실제 본인은 용서를 논할 자격조차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직원 관리를 잘못한 것은 철저히 본인 탓이었다. 기술개발에 매진한다며 대표로서 경영을 소홀히 했다. 일종의 책임 회피였다. ‘너 때문에 망했어!’에서 ‘나 때문에 망했어.’로 딱 한 글자, 생각 하나가 바뀌자 무엇을 해야 할지 선명해졌다.




<백지상태에서 다시 배우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한 기업의 대표였지만, J 마치 사업을 처음 하는 사람처럼 경영에 대해 차근차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재기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의 ‘창업 아카데미’를 접하게 된 J는 약 130시간에 달하는 아카데미 수업을 수강했다. 이후 관련 교육을 5곳의 기관에서 더 들었다. 경영 가치관 정립을 위한 교육 등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한 교육을 차례차례 이수하며 경영인으로서 부족했던 점을 체계적으로 보완해나갔다. 그렇게 총 1,300 시간의 교육을 마칠 무렵 재창업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본금 500만 원으로 재창업에 도전했다. 그마저도 1년 6개월 카드론 할부로 빌린 돈이었다. 1인 창업가로 새 사업을 시작하며 J 대표가 놓지 않았던 것은 역시 기술이었다. 경영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지 기술력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키 콘텐츠였다. 전 회사에서 기술개발에 사력을 다한 결과 독자적으로 세계적인 원천기술을 확보한 바 있었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근거로 더욱 연구개발에 천착해 J는 전 세계 특허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사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전 세계 10조 원 규모의 밀폐장치 시장에 사뿐히 안착해 그간 시장을 선도하던 일본의 유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영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까지 정립한 그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구축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5백만 원도 없었던 그가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티기술개발까지 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나팔꽃을 품에 안고 강남을 향하다>

재창업 과정에서 사무실을 따로 얻을 돈이 없던 J는 벤처기업협회에서 주최하는 중장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다행히 선정되었다. 지원 대상이 되면서 사무공간을 저렴하게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다. 책상 하나 놓인 사무공간을 빌려 쓰는데 월 8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공용 공간을 쓰는 데에는 3만 원이 들었다. 당시엔 3만 원을 내는 것도 버거웠다. 그리고 늘 배가 고팠다. 다행스러운 건 협회나 정부에서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가 잦았다는 것이다. 행사에는 늘 빵과 과자 등 먹을 것이 구비돼 있었다. 저녁 늦은 행사에는 도시락도 제공되었다. J는 허기를 달래러 모든 행사에 참석했다. 참가를 하다 보니 정보도 꾸준히 업데이트되었고 사람들과의 네트워킹도 자연스레 구축되었다. 사업 실패 후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며 숨어만 지내던 J 였다. 알을 깨고 나오듯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재창업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99 데이’라는 행사가 강남에서 열렸다. 행사가 끝날 무렵 참가자들은 주최 측으로부터 화분과 씨앗을 받았다. 꽃을 피워 99일 후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며 화분에 올려놓을 명찰도 함께 받았다. 행사 진행자는 피었으면 하는 꽃의 이름, 즉 본인들의 소망을 명찰에 적고 열심히 싹을 틔워 보라고 말했다. 당시 J는 사업을 지속할 자금이 간절했다. 명찰에 ‘창업선도대학 선정’이라고 적었다. 해당 사업에 선정되면 정부에서 5천만 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J는 꽃을 피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들였다. 때맞춰 물을 주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놓아두었다. 99일 후 그는 자신의 키보다 더 커진 나팔꽃을 들고 강남으로 향했다. 그 사이 창업선도대학에 선정되었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J 대표의 경우 기술자가 창업할 경우 경영은 소홀히 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직원이 부정을 저지르는 불행이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실패를 겪거나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으면 손쉽게 남 탓을 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모으고 모아 남 탓, 제도 탓, 사회 탓만 하며 주저앉아버린다. 남 탓은 쉽지만 발전이 없다. 반면 내 탓은 어렵지만 철저한 자기반성과 객관화를 통해 개선의 여지가 생긴다. 드디어 한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초심자의 마음으로 채워나간 J 대표의 겸허함. 그 시작은 ‘내 탓’이었다.

 자존감이 화두인 시대. 남들이 뭐라 하든 나답게 살며 나를 다독이자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자기 긍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자기 합리화에 빠진 설익은 정신승리는 자기 발전을 가로막는 위험을 내포한다. 남 탓만 하며 타인을 원망하고 세상을 부정하는 독단적인 사고로는 자기 발전이 요원해진다.


 물론 현실적인 기준에서 J 대표의 재도전은 무모해 보인다. 사무실 비용 3만 원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당장 밥값을 해결하기도 어려운 사람이 재창업을 한다는 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이다. 겉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 시간과 에너지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전에 훈수를 두는 현실주의자들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나 자신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특히 J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맹점뿐 아니라 강점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자아 성찰은 필연적으로 자기 객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간 강한 집념으로 쌓아 올린 기술력이 있었고 이는 충분히 승부를 겨룰만한 수준이라 판단했다. 실제로 이를 통해 J는 정부의 정책 자금 지원을 수차례 이끌어 냈고 이는 확실한 재기의 발판이 되었다. 실패를 자산으로 치환해 다시 세상의 문을 두드린 J. 자신의 부족함을 수용할 줄 아는 태도와  자기 확신이 있는 리더는 언젠가는 일가를 이루게 됨을 당당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전 07화 혼돈의 시기에 던지는 단 하나의 질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