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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Feb 03. 2020

내게는 너무 큰 실수...

소심이의 일상 이야기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은 수학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수업이었는데 수업도 빡세게 하시고 벌도 잘 주시던 선생님이라 모두들 기피하고 무서워하던 선생님이셨다. 일차방정식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앞으로 6년간 나를 그토록 괴롭힐 줄은 몰랐던 ‘x’란 놈을 배우고 그 값을 찾아보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와 달리 공부를 곧잘 하던 누나의 압박에 의해 입학하기 전 방학기간에 교육방송에서 해주던 수학 강의를 반 정도는 들었었기에 금방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는 강의만 보았지 복습도 하지 않고 손수 문제를 풀어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수업 중에 선생님의 말씀도 열심히 들었고 겉핥기식 예습도 한 상태라서 각자 책의 연습문제를 풀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섭지 않았다. 대충 보기에도 눈에 익어 보이는 문제 4개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 머리를 써야 풀 수 있을 거 같아 네 개의 문제 뒤에 ‘=’ 표부터 그려 넣었다. 그걸 지나가던 선생님이 발견하고는 "너 이해 못했구나?"라고 하셨다. 이해를 못했으니 차근히 풀지 못하고 '='부터 써놓은 것 아니냐는 거였다. 그 순간부터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자리도 가장 앞자리였는데 뒤에 있는 반 친구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니라며 풀 수 있다고 슬쩍 우겨도 봤지만 이미 머릿속이 하얘져 결국 한 문제도 풀지 못하였다. 교실은 조용했지만 속으로는 모두가 날 비웃고 있을 거 같았다. 너무 창피했다. 그래서 그날로 그 수학선생님을 싫어하기로 했다. 그게 중학교에 갓 입학한 소심한 학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체육대회가 끝나고 며칠 지났을 때였다. 그 수학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와 체육대회 때 내가 경기에 참가한 모습을 보았는데 평소 조용하고 실없이 웃기만 하던 내가 진지하게 운동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며 멋있게 느껴졌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장난칠 거리만 찾는 철없는 중학생들에게는 너무 좋은 먹잇감이었다. 친구들은 과대해석을 늘어놓으며 놀림식으로 추임새를 넣고 장난을 쳐댔다. 장난은 수업이 끝나고도 멈추지 않았고 무서워하던 선생님이 농담 식의 이야기를 해놓고 나니 다들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고 했다. 그 타깃이 나라는 것이 정말 불행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학기초의 기억을 얘기하며 그 선생님이 정말 싫으니 제발 선생님과 나를 엮지 말라고 얘기했다.     


 근데 그 얘기를 들은 친구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토록 창피함을 느꼈던 일이었는데 아무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이었다. 이제 고작 2달 정도 지난 일이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때 이후로 난 선생님이 또 문제를 풀어보라 할까 봐, 친구들이 수학을 못한다고 놀릴까 봐 수학만큼은 늘 미리 예습을 해야 했고, 수학 시간이 다가오면 늘 상당한 긴장감을 느껴야 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웬걸. 그런 일 따위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기억에도 없으니 대부분에게는 일어나지도 않은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일로 혼자서 한동안 끙끙대며 앓고 있었던 꼴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는 수학 시간이 되어도 더 이상 긴장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습관이라 예습은 꾸준히 해갔던 것 같다. 아무도 그 창피했던 순간을 기억 못 한다고 하니 수학선생님도 더 이상 싫지 않아 졌다.     


 그런 경험을 중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하고도 아직도 나는 내 실수나 부족한 면이 드러나는 창피한 순간들이 두렵다. 처음 가는 식당이나 카페에 갈 때면 주문을 매끄럽게 하지 못할까 가기 전 미리 메뉴와 주문 방법을 확인하곤 한다. 줄이 있는지 모르고 나도 모르게 새치기를 한 꼴이 되었을 때는 몰 지식 한 인간으로 보일까 쥐구멍을 찾고 싶다. 잘 모름으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실수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먼지 하나 남지 않도록 이불을 차곤 한다.     


 소심이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자신의 조그만 실수와 그로 인한 창피함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그 한 번의 실수가 영원히 기억되고, 그 실수로 자신이 평가받고,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우습지만 슬프게도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사람들은 메모해놓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저지른 실수보다는 좀 더 잘 기억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어 큰 실수도 작은 해프닝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모든 것을 경험할 수도 없다. 결국 모르는 것은 늘 존재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도 그런 이유로 일어난 실수가 인생의 큰 오점으로 느껴지는가? 그 실수가 하얗던 도화지에 실수로 찍힌 커다란 점으로 보이는 가? 그래서 실수로 찍힌 점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쥐구멍을 찾듯 방구석에 숨어 후회하고 이불을 걷어차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하지만 밤잠을 설칠 뿐 평생 그 점을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세상으로 나가 점 옆에 구름을 그리고 산을 그려야 그 점을 돌이든 달이든, 무언가의 그림자로든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세상과 다시 맞닥뜨리다 보면 실수로 찍힌 점이 어느새 그림에 녹아나게 될 것이다. 밖으로 나가 다시 그런 상황에 도전해보자. 또 새로운 식당을 가보고, 모르던 곳을 여행해보자. 그러면 어느새 그 실수 위에 새로운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토록 자신에게는 크게 보이던 점이지만 실상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 점이기에 하얀 도화지 위의 점은 새로운 경험들 사이에 잘 숨어 도드라지지 않는 그림의 일부가 되어있을 것이다. 스스로도 시간이 지나면 그곳에 점이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오히려 그 점이 있기에 완성된 그림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법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실수에 얽매여 주눅 들지 말자. 인생에 자연히 녹아들 하나의 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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