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 참, 이제 네 돌 지난 손주가 이런 말은 어디서 들어보지도 않았을 텐데 할애비한테 차를 청한다.
"할아버지, 오신 김에 차 한 잔 할까요?"
그냥 차 한 잔 달라고 하면 손주를 만날 때마다 차를 마시니 익숙한 말인데 그날따라 의아한 표현을 썼다.
할아버지는 차 마시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둔 손주다. 사실 차맛이라는 게 달콤한 음료수도 아닌데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걸 보면 참 신통하다. 그렇다고 별 맛도 없는 차를 억지로 마시라고 할 나이가 아닌데 할배만 보면 차 마시자는 말부터 꺼낸다.
이제 말이 늘어서 만날 때마다 깜짝 놀랄 표현으로 할애비를 놀래킨다. 이번에는 오신 김에 차 한 잔 하자니 이렇게 응용해서 쓰는 게 보통이 아니다. 집에 들어서자 말자 청하는 차를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쟈킷만 벗고 찻자리를 벌였다.
할아버지와 손주 사이라도 공통 관심사가 없으면 주고 받을 말이 많지 않다. 이 녀석이 자라는 게 눈깜짝할 새 만큼 빨라서 언제 말이 통하지 않아 같이 놀아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다행히 두돌 쯤 부터 지금까지 차 한 잔 하자는 말은 손주가 먼저 꺼내니 다행이지 않은가?
혈육이면 그냥 살아도 마냥 잘 지낼 수 있다고 여기는 건 오판이다. 부부라고 해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일이 많아야 둘만 살아야 되는 세상이 외롭지 않다. 운 좋게 손주와 가깝게 살고 있다고 해도 공유할 거리를 만드는 건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손주는 스스로 차 마시자고 청해왔으니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방심할 수 없는 게 언제 변할지 모르는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손주가 좋아할 만한 차를 찾아서 차의 향미에 매료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