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면 비운만큼 선명해지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그동안 숙차는 아침 식전 차로만 마셨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오후에 숙차를 마시는 횟수가 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는 징후일지 모르지만 숙차에 손이 자주 간다.
보이차를 숙차로 시작해서 거의 십 년을 마셨다. 2006년 당시에 나오던 대지병배차 생차는 떫고 쓴맛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고수차 열풍과 함께 2015년 무렵부터 생차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그때부터 생차에 몰입되어 지금까지 산지마다 다른 향미에 빠져 있었다. 숙차가 주는 후덕함 보다 생차에는 차마다 다른 다양함이 더 좋았을까? 그렇지만 유달리 더웠던 올여름이 지나면서 그 취향이 바뀌게 되었나 보다.
생차는 마실 때마다 차를 선택하기 위해 망설여야 한다. 그렇지만 숙차는 손이 가는 대로 눈 감고 정해도 된다. 특히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가지는 찻자리라면 생차는 더 고민하며 차를 정해야 한다.
차가 사람을 분별할 턱이 없으니 그 망설임은 욕심을 채우려는 망상일 것이다. 생차는 아무리 잘 선택하려 애를 써도 만족함을 채우기 어렵다. 숙차는 기대 없이 마시게 되는 차라서 마음에 들어차는 만족감이 절로 생긴다.
생차는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만족할 수 없으니 밑 빠진 독 같다.
숙차는 애당초 채울 생각이 없이 대하니 작은 종재 같아서 채우려 하지 않아도 이미 넘치고 있다.
*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로 나누어진다.
생차는 녹차처럼 찻잎을 뜨거운 솥에 덖어 햇볕에 말린 마른 찻잎을 떡처럼 만든다.
숙차는 햇볕에 말린 찻잎을 발효시켜 만드는데 생차보다 저급 찻잎을 써서 가격이 싸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