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茶友)는 차와 함께 하는 벗, 그들이 있어 향기로운 일상을 보내니
이십여 년 가까이 차 생활을 하다 보니 다우들과 나눈 차도 많습니다.
그 차들의 대부분은 제가 보이차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 받았었지요.
그동안 거의 다 마시고 남아 있는 차는 별로 없지만 조금씩 보관하고 있습니다.
벌써 제 나이도 일흔을 앞두고 있으니 고인이 된 분도 계십니다.
대구에 살았던 동경당님은 고향이 부산이라 저를 친 동기처럼 대해 주셨지요.
다연회 창립 다우로 만난 세석평전님은 고등학교 선배라는 인연으로 제게 보이차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두 분과는 자주 찻자리를 가지면서 보이차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귀한 차를 마실 수 있었지요.
지금은 두 분이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그분들과 함께 마셨던 차를 떠올릴 뿐입니다.
근래에는 다우님들과 교분을 나누면서 보내온 차를 마시게 되면서 차 생활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세 해 전에는 서울에서 차를 마시자며 찾아온 분을 통해 첫물차의 가치를 알게 되었지요.
요즘은 백앵산 차를 보내온 다우 분이 있어서 천년이 넘은 수령의 야생차의 향미에 푹 빠져 지냅니다.
차만큼 귀한 다우들과의 교분으로 보이차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정점에 와 있음을 느낍니다.
더 좋은 차를 바라는 차 생활은 달콤한 음료가 갈증을 더하는 것처럼 만족할 수 없습니다.
다담을 나눌 수 있는 다우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일상이 차 생활로 행복할 수 있지요.
더 좋은 차보다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다우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오늘도 빈 시간을 채우며 쓴 글로 다우들과 나눌 다담을 기다리는 게 제가 누리는 소확행입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