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운 투병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 도착해 집을 향해 가는 동안 캘리포니아의 공기를 마음껏 흡입했다. 이거지 이거. 공기가 좋은 지 안 좋은 지 매일처럼 확인했던 미세먼지의 앱 따위는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 또한 나를 반겨주듯 반짝거렸다.
내가 왔다는 소식에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시차도 적응해야 했지만 그동안 밀린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냥 반갑고 즐겁기만 했는데 그동안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위축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미국에서 사업도 번창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고 유럽 여행을 호화롭게 다니며 인생 상향 곡선을 그린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분명 좋은 이야기였지만 상대적 빈곤과 열등감이 몰려왔다. 2년 가깝게 내가 아프면서 우리 집은 모든 것들이 정체되고 무거운 돌이 물아래로 가라앉듯 침체되어 있었다. 하던 사업도 멈췄고, 병원비로 거액을 썼으며,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나와 아이를 돌보느라 심신이 지쳐있었다. 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회복해 돌아오는 것이 최선이었는데···.
친구들은 그저 날 반가워했고 자신들의 현재의 삶을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그 이야기들이 잔잔했던 내 마음에 불안을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되었다.
나도 최선을 다해 산 것 같은데···.
이제부터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하나···.
이렇게 경기가 안 좋은데 뭘 새롭게 할 수 있을까···.
건강만 회복하면 고생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절망 속에 있을 때, 자연스럽게 하고 있고, 그 절망 속에서도 하고 싶었던 일이 뭔지 생각해 봐. 당신을 보면서 놀란 건 암투병을 하면서 글을 쓰는 걸 보고 그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어."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나를 보면서 남편은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맞다. 암투병을 하면서 4권의 전자책을 출판했다. 책들도 지속적으로 팔리고 있어 자신감을 얻으면서 '글을 쓰고 출판하면서 살리라' 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친구들과 만나면서 내 목적지를 잠시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려던 일에 집중하고, 그 일을 지속해.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그걸 지속하면 5년 뒤에, 10년 뒤에 어떤 열매가 열릴까 기대하며 사는 건 어때?"
이렇게까지 이야기해 주는 남편의 말에 꺼져있던 나의 인생 내비게이션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적 빈곤, 열등감, 불안함···.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내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고 있던 일을 지속하는 것뿐이다.
"집중하자"
"지속하자"
오늘도 친구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지만 나가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계획한 대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아다지오를 들으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위대한 나만의 길을 향한 지도를 보며, 내비게이션의 스타트 버튼을 지그시 눌렀다.
그대는 그대를 위해 마련된 위대한 길을 걷는다. 이 길은 그대를 제외하곤 누구도 걸을 수 없다. 그대의 발걸음이 그대가 걸어온 자취를 지우기 때문이다. 그대가 처음 길을 떠났던 곳에 '불가능'이라는 표지판만이 걸려 있다.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