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서랍 속에서 좋은 기억을 꺼내 보는 습관

by lemon LA

어제 오랜만에 뉴욕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는 3년 전에 남편과 사별을 한 후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면서 살고 있다. 남편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출근길에 심장마비로 쓰러져 반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다 결국 가족들의 결정으로 산소 호흡기를 떼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사고와 죽음 앞에 친구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 남편이 그렇게 죽기 전에 부부사이가 좋지 않아 슬픔의 고통을 더욱 진하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 많이 나아졌나 봐. 괴로웠던 기억보다 그래도 좋았던 기억들도 떠올라. 아이와 내 꿈에도 종종 나타나서 위험한 순간들로부터 도와주려고 하더라고.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


친구의 말대로 지금은 마음 상태가 많이 나아진 듯 들렸다. 장례식을 치르고 거의 2년 가깝게 원망과 분노와 죄책감에 범벅이 되어 지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고, 혼자 생계를 책임지느라 분주하면서도 틈틈이 비집고 들어오는 그리움과 상처들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어제는 그런 이야기들과 더불어 아이들도 자신도 잘 지내고 있는 근황을 전하며 서로 많이 웃었다.


"그렇게 원망만 하지 마. 예전에 처음 만나서 사랑했던 때도 기억해 봐. 그때 주변사람들이 결혼을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서로 좋아서 죽었잖아. 꼭 결혼해서 행복할 거라 했잖아. 내가 증인이야."


친구는 내가 건넨말에 깔깔거리며 웃었다. 마치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식으로.


과거라는 기억 서랍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어느 날은 좋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나쁜 기억에 질질 끌려 하루가 시작되기도 한다. 아픈 기억이나 슬픈 기억, 부정적인 기억이 떠오르는 날은 어김없이 그 기억에 묻혀 하루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같은 서랍 속에 어두운 색깔의 옷도 들어 있지만 밝은 색의 옷도 들어 있듯이 기억도 그렇다. 꼭 나쁜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꺼내서 입는지에 따라 밝게 보이기도 하고 멋져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도 뭘 꺼내서 음미하고 추억하는지에 따라 하루가 달라질 수 있다.


기억 저편을 뒤적뒤적 거려 본다. 과거의 서랍 속에 내가 많이 웃었던 기억, 용기를 얻었던 기억, 작은 것을 성취해 기뻐했던 기억, 소중한 기억, 가슴 뭉클한 기억, 행복했던 기억, 가슴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 열정으로 가득했던 기억···.


내일 아침 무엇을 입을까 먼저 생각해서 준비해 두면 바쁜 아침에 옷을 고르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듯이 기억도 그렇다. 내일 아침 꺼내 쓸 좋은 기억을 자기 전에 챙겨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 우리 아이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휩싸여 있다. 미국 경제상황도 어렵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한다는 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아이의 불안은 결국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불안으로 다가왔다. 인생 길게 보면 지금 이 시점을 그리 조급하게만 생각할 필요도 없는데 '당장' '지금'에 마음과 생각이 묶여 다급해지고 두려워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과거의 서랍 속에서 무엇을 꺼내 보면 먼지처럼 공중에 떠도는 불안이 바닥으로 차분히 가라앉을까?


이거다. 낼 아침에는 아이가 한 살이 되어 겨우 걷던 기억을 꺼내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앨범 속 사진처럼 그 장면을 오래 생각하면서 지금 청년이 되어 걱정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현실 속에 다시 그 시간을 생각해 스스로도 용기를 얻고 아이에게도 격려를 주고 싶다. 그렇게 걸음마부터 시작해 건강한 성인이 되었듯이, 지금 새로운 시작은 두려움보다 설렘이 가득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는 아이의 첫걸음마가 내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웠다. 지금도 세상을 향해, 사회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디려고 한다. 괜찮다. 이런 시간을 통해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면 된다. 그 시간 동안 불안함으로 내 마음을 채울 필요가 없다. 오늘 선택한 기억의 한 조각이 미래 저편의 멋진 작품의 일부가 되리라 믿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잘 걸어가기를, 엄마는 너를 응원할게.'




"희망만 있으면 그 안에서 행복의 싹은 자란다. 희망은 제2의 영혼이다. 당신에게 아무리 불행한 일이 있어도 희망이라는 영혼을 품고 있다면 쉽게 무너지거나 좌절하지도 않는다."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