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들은 독립, 엄마는 자립, 이제는 헤어질 시간!

by lemon LA

아이가 내 옷자락을 꼭 잡고 주변을 맴돌며 쫓아다니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거꾸로 아이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만 3, 4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혼자 자던 아이는 어느 날 한 밤중에 내 방으로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억울함을 감출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엄마는 어른인데 왜 아빠랑 둘이서 자고, 나는 아이인데 왜 무섭게 혼자 자야 돼? 불공평해."


잠결에 정신이 없어 그 불공평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도 못 해주고 그날은 일단 데리고 셋이서 함께 잤다. 다음날 이제 다 컸으니 혼자 자야 된다는 억지스러운 설득을 해 아이방에 혼자 재우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안 왔으면 좋겠는데, 밤에 오며 귀찮은데'라고 생각하며 잠들었던 그런 날들도 있었다.


아들은 어느덧 사춘기. 누구는 아들의 사춘기는 '사촌'이 되는 시기라고 한다. 대학을 가면 '팔촌'처럼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다. 지금 우리 아들은 사춘기를 겪으며 대학으로 멀리 떠나게 되었다. 사촌처럼 되는 것도 서운한데 마음에서 8촌으로 호적 정리를 급작스럽게 해야 하는 이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힘들게 느껴지는 건 집착이 많은 엄마라서 그런 걸까?





최근 남편이 추천해 준 드라마가 있다. "한 번 봐봐, 괜찮은 드라마야, " 라며. 처음에는 <이번 생도 잘 부탁해>라는 드라마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뻔한 환생 이야기, 이루지 못한 사랑에 관한 그런 로맨스겠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내 예상을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환생의 횟수는 과히 상상을 초월했다.


이번생도 잘 부탁해.jpg


<이번 생도 잘 부탁해>라는 드라마는 18번의 환생을 거듭하고 다시 태어나 그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주인공 '반지음'이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문서하'를 찾아가면서 생기는 환생 로맨스이다. 독특한 것은 이번 생이 19번째. 스토리는 로맨스 중심이지만 나는 유난히 '환생'에 몰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인간관계에서 피어나는 희로애락을 담은 애달픈 이야기에 점점 더 끌려 들어갔다.


만남과 헤어짐, 그 안에서 운명을 좌우하는 선택과 결정, 인연과 악연, 사랑과 증오, 그리고 마지막은 결자해지라는 주제로 끝이 난다. 결자해지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이 그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책임감'에 무게를 담은 한자성어이다.


결자해지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부모자식 관계, 이것은 명확히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자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획적이든 계획적이지 않든 부모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매듭을 먼저 맺은 것이 부모이기에 자식과의 관계가 행복하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글쎄 잘은 모르겠다.


"너는 이제 다 컸으니 독립할 나이야. 나가서도 잘 살 거야."

말은 이성을 가진 엄마처럼 아주 번듯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정말 아이에 대한 걱정은 별로 되지 않았다.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집을 떠나고 싶어 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나도 그랬으니까.


문제는 바로 나다. 외로울 것 같고, 아이가 없는 인생은 허무할 것 같고, 수많은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분리불안이 생길 지경에 이르러 알게 되었다. 이제 아들은 독립, 엄마는 자립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그러면서 수없이 혼자 되뇐다.


'정작 자립해야 하는 것은 엄마야, 바로 나라고'




탁! 스브스슥... 누군가 인생의 모래시계가 뒤집어졌다며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만남의 시간이 있었듯이 헤어짐의 시간이 왔은 뿐이니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깨우쳐 주는 것 같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번 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생에 아들과 나는 무슨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을까? 나는 어떤 부모, 어떤 엄마로 이 아이와 이번 생을 잘 마무리 지어야 하는 걸까? 전생에는 무슨 연으로 이번 생에 엮였을까? 다음 생에 또다시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만나게 될까? 이번 생은 몇 번째일까?


현재 맺고 있는 모든 인연과 관계는 꼬리를 물고 나와 아들에서 부부, 친구, 가족, 주변인들에게까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우연보다는 인연으로 묶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씩 홀가분해지면서 주변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래, 이번 생에 만난 모든 인연들을 소중히 대하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버겁고 외로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부모와 자식으로 이번 생이 다 인 것처럼 느꼈던 한계로 가득했던 세계가, 이번 생에서 다음 생으로 연결되는 무한한 세계로 확장되면서 내 마음과 생각도 그만큼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이번 생에 만난 소중한 인연일 뿐이다. 그러니 시간을 아껴 사랑해야 한다.' 다음 생이 지금보다 더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생을 바라보니 한없는 평안이 밀려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