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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Feb 18. 2022

아들아, '에바'가 누구니?

'신조어'를 대하는 자세

  며칠 전의 일이다.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중학생 아들이 학원 숙제를 하다 머리를 식힐 겸 거실에서 게임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소파에서 책을 읽다 아들과 함께 잠깐 봤는데, 어떤 유튜버가 본인이 직접 게임을 하는 모습을 중계하고 있는 거였다.   

   

  ‘세상에... 이런 게 정말 재미있다고?’     


  흥미 있게 보는 아들과 달리 게임에 관심과 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아무 감흥 없이 심드렁하게 보고 있었다. 아들이 재미있어하는 거니까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로서 기본 지식이라도 얻을까 하는 심정으로.     


 “이거 완전 에바다, 에바!”     


  그런데 그 게임 유튜버가 반복적으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에바?’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아들에게 물었다.      


“‘에바’가 무슨 말이야? 게임 캐릭터 이름이야?”

“아니, 그냥 좀 심하다, 너무 하다... 이런 뜻이야.”

“근데 왜 ‘에바’라고 해?”

“글쎄. 그건 나도 몰라.”     


  아들의 설명을 들으니 더욱더 호기심이 생겼다. 어떻게 ‘심하다’, ‘너무 하다’가 전혀 의미를 추측할 수 없는 말, ‘에바’가 되었지? 내가 아는 ‘에바’는 외국 여자의 이름뿐인데 말이다(그러고 보니 히틀러의 연인 이름도 에바였지.).     




  신조어들 중에도 충분히 의미를 추측할 수 있게끔 변형되거나 사용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노잼’ 같은 경우는 영어의 ‘no’에다가 한국어의 ‘재미’가 ‘잼’으로 축약되어 합성된 것인데 나같이 신조어를 잘 모르는 중년들도 처음에 들었을 때는 잘 몰라도 금방 맥락을 파악해서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에바’라니? 내가 만약 게임을 잘 알아서 그 게임의 흐름, 즉 맥락을 파악하고 있었다면 알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아들 말로는 ‘에바’라는 말이 단순히 게임에서만 사용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즉 아이들 사이에서는 일상에서도 통용이 되는 말이라는 얘기다.      


  ‘에바’라는 말의 유래가 궁금해진 나는 핸드폰에 ‘에바’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네이버 국어사전(엄밀히 말하면 우리말샘에 등록이 되어 있었다. '우리말샘'은 국립국어원에서 2016년에 개통한 것으로 일반 사용자가 어휘를 등록하고 편집할 수 있는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국어사전이다.)에 단어 설명이 나와 있었다. 이 단어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알고 있던 단어라니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참고로 ‘노잼’도 네이버 국어사전(우리말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니 다음과 같이 뜻이 정의되어 있었다.     


에바(error over)

청소년들 사이에서, 정도를 넘어서 지나치게 하는 행동을 이르는 말.     


  바로 밑에 ‘오픈사전’(이용자들이 직접 등록한 단어로 일부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포함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이 쓰여 있음.)에 나온 정의를 보니까 ‘에바’는 '요즘 신세대 사람들이 오버를 변형해서 말한 것이다. 약간 지나친 느낌‘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아, ‘에바’가 ‘error’의 영어 발음 일부에다가 ‘over’의 영어 발음의 일부를 붙여 만든 신조어구나!      


  원래 다 붙여 말한다면 ‘에러 오버’가 되어야 하는 건데 앞 단어와 뒷 단어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발음만 따다 만든 단어였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궁금증이 풀려 속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의미도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이 말이 어떤 나쁜 말이나 행동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어떤 말들은 굉장히 저속하고 나쁜 의미를 가진 말이나 행동에서 생겨난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하다’, ‘심하다’는 의미로 ‘에바’라는 말을 쓰면서도 막상 그것을 왜 ‘에바’라고 하는지 몰랐던 아들에게 사전적 의미를 설명해 주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들을 보면서 많은 아이들이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그냥 사용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우리 아들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그 말의 유래도 모르고 심지어는 의미도 정확히 모른 채 그냥 유튜브나 TV에서 하는 말들을 듣고는 따라 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한 젊은 심사위원이 한 참가자의 노래를 듣고 너무 감탄한 나머지 옆에 있던 다른 심사위원에게 “정말 개 멋있어.”라고 하는 걸 보았다.      


  사실 그것을 보고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의아하기도 했다. 저 장면이 편집되지 않고 방송이 된 걸 보면 저 정도는 방송이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이 된 것일까? 코미디 방송이나 예능 방송이라면 어느 정도 용인될 수도 있겠지만 저것은 그래도 심사위원의 발언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면 개는 참 황당하고 억울할 것 같다. 개는 아무 죄가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소위 ‘꼰대’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든다(‘꼰대’는 ‘늙은이’를 뜻하는 은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되어 있다.).




  이렇게 터진 둑으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처럼 매일매일 새로이 넘쳐나는 신조어들. 특히나 줄임말이 성행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인터넷 상의 의사소통이 늘다 보니 줄임말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이겠지.


  물론 언어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시대, 문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고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신조어를 통해 당시 사회의 특징들을 엿볼 수도 있고, 신박하고 참신한 표현으로 언어 사용에서의 풍부함과 신선함을 더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신조어의 사용은 아름다운 고유어의 자리를 빼앗고 변질시키는 역기능도 분명히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점점 더 세대 간의 거리를 떨어뜨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하면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문제로까지 심화될 수도 있다.      


  분명히 똑같은 한국인들이고 모두 다 분명히 한국어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세대와 세대 간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젊은 세대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기성세대가 답답할 것이고, 기성세대는 기존의 좋은 멀쩡한 말을 두고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때에 따라 비속어나 욕설로도 들리는)들을 사용하는 젊은 세대가 못마땅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묘수는 없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만이 최선의 방책일 뿐이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이해하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해 주는 것.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무분별한 신조어 사용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범에 따라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 이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와 자녀 간에도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에바'처럼 아들이 즐겨 보는 방송이나 친구들과 사용하는 언어들 가운데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알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물론 충고와 조언도 할 것이다.


  만약 그 말이 나쁜 말이나 행동에서 유래했다거나 비속어, 욕설과 관계가 있는 거라면(다행히 우리 아들이 비속어나 욕설을 사용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은 없다. 늘 그런 말들은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용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부모로서 이해할 것은 이해해 주되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확실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 퇴근한 남편이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이런 질문을 했다. 마치 굉장한 수수께끼를 낸다는 듯이.


  "여보, 우리 '반모' 할래?"

  "???? 그게 무슨 뜻이야?"

  "반말 모드. 우리 이제부터 반말로 하자... 이런 뜻이래. 오늘 어떤 직원이 알려 준 말이야."


  남편은 신이 나서 새로 배운 말을 나한테 알려 준 것이다. '반모'는 '반말 모드(mode)'의 줄임말이었다.


  나는 또다시 출현한 신조어의 공격에 얼른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역시나 네이버 국어사전(이 말은 '오픈사전'에만 등록되어 있었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엄청 최신 단어인 줄 알았더니 웬걸 이미 몇 년 전에 등장했던 말이 아닌가. 남편이 그렇게 의기양해하며 마치 무척이나 새로운 정보인 문제를 낼 말은 아니었다. 물론 어차피 나는 몰랐지만...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들을 얼마나 잘 아는지 측정해 보는 신조어 테스트가 있길래 좀 봤더니 정말 가관이었다. '박박', 'ㅈㅂㅈㅇ', '어쩔티비', '700', '갓생', '점메추', '킹리적갓심', '드르륵 탁', '크크루삥뽕'...


  이게 정말 어느 나라 말인지... 유일하게 '어쩔티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뜻은 몰랐고('어쩔티비'는 '어쩌라고, 가서 TV나 봐.'의 줄임말이란다. 쉽게 말해 '어쩌라고?'의 뜻이란 거다.) 그 외에는 진짜 들어 본 적도 없는 말들이었다.


  내가 정말 시대에 뒤처지고 있는 것인지 시대가 나에게 혀를 내민 채 약을 올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또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신조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되 경계해야 할 것은 경계해서 고운 우리말, 한국어를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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