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이로스엘 Feb 15. 2022

물건에도 정이 든다

우리 집 냄비가 일깨워준 생각들

  몇 달 전인가.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날의 메인 메뉴는 김치찌개. 냄비 한 솥 가득 묵은지에 통조림 참치, 스팸을 넉넉히 넣고(우리 집은 돼지고기 김치찌개보다는 참치와 햄을 넣은 김치찌개를 선호한다.) 팔팔 끓이다가 중약불로 줄여 뚜껑을 덮은 채 좀 더 끓이는 중이었다. 모름지기 김치찌개는 푹 끓여야 맛있으니까 말이다.     


  김치찌개를 기다리다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TV를 보며 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둔탁하게 ‘!’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경한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릇 깨지는 소리도 아니고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도 아닌 이상야릇한 소리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소리의 진원지를 찾다가 내 눈이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던 냄비...!     


  뚜껑을 덮고 중약불에 김치찌개를 끓이던 중이었는데 유리로 된 냄비 뚜껑이 그만 조각조각 갈라져 깨져버린 것이다. 너무 신기하게도 뚜껑의 형체는 그대로 유지한 채 유리만 아주 작은 조각들로 금이 간 상태였다.       

 

  ‘아, 내 김치찌개...’     


  처음에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한 솥 가득 끓인 김치찌개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 남편한테도 이 비보를 알렸다. 예상치 못한 김치찌개의 사망 소식에 퇴근 중이던 남편도 안타까워했다. 나는 속상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퇴근하고 와서 힘든 몸을 이끌고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인데 맛도 한 번 못 보고 몽땅 버리게 된 것이 너무 속상했다.      


  ‘아... 그럼 이 냄비도 못 쓰는 거야?’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뚜껑을 잃은 냄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집에는 냄비가 여러 개 있지만 내가 제일 자주 쓰는 냄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냄비였다.


  일단 이 냄비는 크기가 적당하고 아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무게감이 있으며 음식이 눌어붙지 않아 설거지가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어서 애용해 왔다. 그리고 그것보다 내가 이 냄비를 자주 사용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엄마가 주신 냄비이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정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다.


  ‘여보, 나 이 냄비... 뚜껑 없어서 이제 못 쓰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퇴근 중이던 남편은 내 카톡 메시지들을 받고 좀 황당했을 것 같다. 난데없는 김치찌개의 사망 소식에 이어 뚜껑을 잃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된 냄비에 대한 슬픈 마음까지 일일이 속사포처럼 전하는 나 때문에. 그런데 나는 정말 속상했고, 이런 시시콜콜한 속상함까지 즉각적으로 전달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남편밖에 없었다. 그리고 늘 묘안을 짜내는 것도 바로 남편이니까. 그때도 역시 남편이 기똥찬 답장을 보내왔다.    


  다른 냄비들 중에 그 냄비 뚜껑이랑 크기가 맞는 뚜껑이 있을 거야! 뚜껑 크기만 맞으면 쓸 수 있어.’     


  역시... 원칙주의자인 나에 비해 생각이 열려 있고 머리가 말랑말랑한 남편이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지?? 나는 이제 뚜껑이 없어서 냄비를 못 쓰게 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이다.

 




  일단 깨진 유리 뚜껑과 김치찌개를 죄다 버린 후에(뚜껑에 금만 가서 실제적으로 김치찌개에 유리 조각들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아주 미세한 유리 파편이 혹시라도 떨어졌을까 봐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정리해 둔 다른 냄비들을 찾아보니 어머나 이럴 수가! 정말 크기가 딱 맞는 스테인리스 냄비 뚜껑이 있었다.      


  냄비 몸체와 뚜껑이 색깔도 다르고 재질도 달라 겉으로 보기에 언발라스하긴 했지만 사용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보기에는 좀 그렇지만 뚜껑 크기가 딱 맞아 문제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비록 정성껏 끓인 김치찌개를 버려야 했고, 가장 아끼는 냄비는 정체불명의 모습을 갖추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냄비를 계속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오늘 아침에도 이 냄비에다가 떡만둣국을 끓여 먹었다.).     




  누가 보면 그깟 냄비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면서 심각하게 감정 이입을 하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집에 냄비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선물로 받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고이 모셔둔 좋은 새 냄비도 있는데 굳이 그리 비싸지도 않고 오래된 냄비 하나에 남편한테 폭풍 카톡을 보내면서까지 속상함을 토로했는지.


  그런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 있다. 많이 비싸거나 좋은 게 아니어도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손에 익고 정이 들어 마치 친구처럼 느껴지는 물건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물건들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사용한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때가 오면 큰 아쉬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물건을 사고 쉽게 버린다. 유행이 조금 지났다고 싫증이 난다고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는 것이다. 워낙 새로운 물건들, 더 성능이 뛰어난 물건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풍족한 시대이니 사람들이 물건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나 값비싼 사치품도 아니고 이런 냄비 따위에 애착을 갖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갈수록 물건에도 정이 든다는 것을 느낀다. 나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애써 준 물건들이 고맙기도 하고, 평생 그렇게 노력 봉사만 하다가 결국엔 버려지거나 선반 어딘가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잊히게 되는 삶이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가 물건이라면 최대한 많이 사용됨으로써 보람을 느낄 것 같다. 거기다 사용하는 사람이 고마워하고 소중히 다뤄주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다른 냄비의 뚜껑을 빌려 쓰고 오늘도 아침부터 떡만둣국을 끓이느라 열일 한 우리 집 냄비가 왠지 모르게 안쓰러우면서도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지는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걱정되는 녀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