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보던 티브이 속 만화 주인공은 초능력이 있었다. 만화가 방영하던 날에는 친구와 방에 들어와서 초능력 놀이를 하며 어떤 초능력이 좋을지 고민을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순간이동 아니면 시간이동 둘 중 하나를 선택했던 것 같다. 상상 속 놀이지만 매번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그렇게 고민하면 언젠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덧 난 해리포터의 마법 지팡이에도 반응하지 않는 현실 속 무덤덤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어제 오랜만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들은 친구의 질문에 난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다.
" 타임머신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
첫 번째로 질문을 받은 지인은 잠시 고민하는 가 싶더니 결혼 전이라고 대답했다. 첫사랑과 오랜 연애 끝 결혼에 이른 친구는 과거로 돌아가 여러 사람과의 연애를 꿈꾸는 모양이었다. 나도 격하게 공감했지만 어딘가 부족한 기분이다. 나는 질문을 한 친구에게 역으로 다시 질문했다. 친구는 고민도 없이 10대 시절, 그것도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 옆에 앉은 친구가 바로 말을 보태며 자기도 중학교 시절이라 대답했다.
그때로 돌아가 꿈 많고 열정 한가득한 중학생이 되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인 듯싶다. 나라면 언제라고 대답했을까.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10대 시절을 떠올려 보자. 어렸을 때의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목적을 위한 행위였을 뿐이다. 얼른 대학에 들어가서 놀고 싶다. 공부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이었다. 또 여중 여고를 나와서 여자들의 생태계에서 무던하게 잘 어울리기 위해 꽤나 많은 노력도 했었다. 분명 즐거운 기억도 많았지만 어린 나는 그때 굉장히 고군분투했던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웠던 20대 시절은 다시 생각해봐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힘겹게 대학에 왔지만 학과 공부는 저 멀리 내팽개치고 그렇다고 술을 잘하는 편도 아니어서 부어라 마셔라가 아닌 그저 방구석에서 소소하게 놀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취업공부에 들어갔으니 어찌 보면 참 불쌍한 대한민국 청춘이었다.
이제 20대 후반의 나? 결혼을 하기 전의 나? 취업을 하고 난 후는 이제 내 앞길이 탄탄대로 일 것만 같았지만 적성에 전혀 맞지 않는 업무 탓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결국 그 일을 10년 가까이하고 그만뒀지만, 10년 동안 무엇을 한 걸까에 대한 후회가 많았다.
그러다 문득 진부한 생각이 떠올랐다. 고르고 골라 과거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곳에는 나의 소중한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냥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결국 아이가 발목을 잡는다. 이 모든 기억을 지운채 과거로 돌아간다면 달라진 게 무엇이 있을까. 이 모든 기억을 안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아이를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이유가 아이 탓만은 아니다. 과거의 나는 매 순간 열심히 했고 그 나이에 맞는 장애물을 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유명한 사람이 된다거나 무슨 업적을 이뤄낸 건 전혀 없지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내가 내 삶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나를 부정하지 않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와의 현재를 더 열심히 살겠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가끔은 타임머신이 그리울 때가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