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다 싫었다 좋았다 싫었다
아무래도 37살 내 인생의 사분의 일을 보낸 곳이 회사라 그곳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가끔은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때의 그 월급이 그립기도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알게 된 것
1. 가벼워진 지갑은 지옥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명품이나 큰돈 들여 소비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철마다 보세 옷을 주기적으로 사 입었고, 지름신이 때때로 찾아오면 내 나름의 플렉스도 하곤 했다. 하지만 외벌이가 된 이상 지름신은 그저 정말 하느님 부처님과 같은 신일뿐이고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 되었다. 사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는 하루 이틀 지나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돈이 없으니 물욕이 사라진 것인지 물욕이란 것이 원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후자일 거라 믿고 싶다. 아이를 위한 소비는 크게 줄 지는 않았지만 나를 위한 소비는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내 돈 벌어 줄곧 생활을 해서인지 남편 돈을 내 돈처럼 쓰는 게 쉽지 않다. 가끔 빠듯한 집안 살림에 이래서 현실은 지옥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2. 여유로워진 마음은 천국이다.
회사를 다니기 전보다 그만둔 후에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큰 수확이었다. 당연히 전보다 많아진 시간에 20대에 했어야 할 고민들을 지금 나는 천천히 해나가는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5~6시간 동안이지만 회사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뒤척거리기도 하지만, 가벼워진 지갑이 주는 공포를 이제는 더 잘 알기에 더 열심히 살고 있다.
3. 퇴사를 추천한다? 추천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 회사 가기 싫다. 오늘이 주말이면 좋겠다. 이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업무 중에도 동기들과 메신저로 퇴근하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를 주문처럼 반복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알았다. 나는 일이 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좋아서 하는 일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작정 퇴사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월급이라는 달콤한 꿀을 먹이 삼아 나를 키우는 일을 차곡차곡 한 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베스트가 아닐까 싶다. 돈 때문에 억지춘향 노릇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나. 나도 아직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지만 회사를 쭉 다녔으면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만나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50살, 60살 혹은 그 뒤의 나이라도 좋다. 그 나이에 내 인생의 전성기가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