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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Feb 03. 2021

외국도 집 지으면 10년 늙는구나

넷플릭스에 <그랜드 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영국의 TV 프로그램인데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케빈 매클라우드가 집을 짓는 사람들을 찾아가 과정과 결과를 소개한다. 그중 '이스트 런던의 작은 집' 편에는 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회차의 공식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비싼 월세에 질린 커플이 낡은 작업장에 런던에서 가장 작은 침실 2개짜리 집을 짓는다. 공간이 작으니 지하를 공략하는 커플. 실속 있는 3층 구조에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집을 지으면서 직장까지 관두고 이에 매진하는 남자의 이름은 '조'이다. '조'는 여러 난관에 부딪히는데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지하를 파는 토목 공사에서 일어난다. 흙막이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업자의 말을 믿고 지하를 파다가 흙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다 되려 돈은 돈대로 더 들고, 공사 기간은 늘어나고, 새로운 업자를 찾아야 했다. 상심한 '조'의 얼굴을 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조' 봐라.

'조' 꼴 나면 안 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조'는 작지만 멋진 집을 완성한다. 하지만 집을 지으면서 점점 초췌해지던 그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멋지게 완성한 커플의 집



외국도 집 지으면 고생하는 건 똑같구나 싶었다. 동질감도 느껴지고 역시 집 짓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집 지으면서 10년 늙는 건 다 똑같나봐, 라는 내 말에 남편이 대답했다.


"욕심을 버리면 돼."


사실 조는 공사 중간중간 몇 가지를 추가한다. 물론 다 좋은 것들이지만 빠듯한 예산과 이미 넘겨버린 공사 기한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부족한 자원을 메꾸기 위해 자신이 직접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한다. 한 번 지으면 몇십 년을 써야 하니 지을 때 잘 짓자,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좋은 것을 고르자면 끝이 없다.


예산이 충분하다면 상관없지만 프로그램에 나오는 다른 집들도 예산이 남아도는 곳은 없다. 공사비가 모자라 내부 인테리어를 생략하고, 온 가족을 동원해 벽돌을 쌓기도 한다. 모두 빠듯한 예산 안에서 강약을 조절하며 예산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가 지을 집에서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에만 집중하자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랜드 디자인>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점이 하나 더 있다. '조'와 '리나' 커플도 그렇지만 다른 회차에 나오는 부부들도 말을 참 다정하게 한다. 특히 '자급자족으로 짓다' 편은 10년에 걸쳐 집을 짓는 데도 닦달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을 믿어요', '우리는 지금 삶에 만족해요' 이런 대화가 오고간다. 우리 같으면 방송이고 뭐고 이미 고성과 삿대질이 천장을 뚫었을 텐데 말이다. 진행자가 빠듯한 예산이나 집을 지으면서 생긴 문제점 등 예민한 질문을 해도 그들은 비난의 화살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않는다. 서로 북돋워주고 고생했다고 말할 뿐.


욕심을 버리고, 서로에게 따뜻하게 대하기. 집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고생한 '조'에게 지구 반대편에서나마 안부를 전한다. 멋진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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