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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Feb 19. 2021

뒤늦게 건축 필증을 수령하다

건축관계자 변경은 연말에 완료되었는데 아직 필증을 찾으러 가지 못했다. 직접 군청에 가야 하는데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았다(내가 아닌 남편이). 부인인 내가 대신 갈까 생각도 해봤으나 집 근처 10분 거리의 마트만 다니는 초보 운전자인 내가 가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렇게 미루다 지금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려던 남편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필증 찾으러 가야 되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출근 준비에 열중했다. 아이 등원 준비를 하던 나는 '오늘 간다는 건가?' 갸우뚱했지만 더 말이 없길래 아이 도시락통과 물통을 챙겨 어린이집 가방에 넣었다. 남편 배웅을 하고 잠시 뒤 아이도 어린이집에 갔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따 양평 같이 갈래?"

"어!!!!"


남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나갔다. 안 그래도 아침에 '갈 거면 나도 같이 갈래' 하려다가 더 얘기가 없길래 그냥 말았다. 모처럼 날도 좋고 코로나로 외출도 어려워서 드라이브 겸 좀 나가고 싶었다. 직접 운전해서 경치 좋은 곳에 갈 수도 있지만 왕초보인 나는 운전할 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저 생존 운전이다. 나도 죽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해하지 않도록 온 정신을 집중해 50km로 정속 주행을 한다. 앞차, 옆 차, 뒤차도 간신히 보면서 따라가는데 주변 경치를 감상할 여력 따윈 없다. 그런데 마침 양평을 간다니, 내가 빠질 수 있나!


출근해서 급한 일을 마무리하고 남편이 다시 집으로 왔다. 남편은 꼭 오늘 가려던 건 아니었는데 혼잣말로 한 '필증 찾으러 가야 되는데' 소리를 들은 내가 눈을 번뜩이며 자기를 쳐다보더란다. '나도 같이 가'라고 말하는 내 눈빛을 무시하고 일단 출근했는데 그 번뜩임이 잊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 오늘 찾으러 가자' 하고 중간에 차를 돌리려다 오전에 할 일이 있어 그것만 서둘러 처리하고 집에 왔다고 한다.


점심은 국수리에 있는 국숫집에 가서 먹기로 했다. 공사 구간이 있어서 조금 막히긴 했지만 두물머리를 지나 강을 보며 신나게 달려 국숫집에 도착했다.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이번에는 둘 다 된장 수제비를 시켰다.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겉절이를 넣어 쓱쓱 비벼 먹고 있으니 친애하는 된장 수제비가 나왔다. 내가 지난번에 너를 못 먹어 어찌나 원통하였는지 아느냐, 크게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남편이 밥을 먹으면서 개인사업자의 장단점, 주식, 부동산 이야기를 했는데 된장 수제비에 푹 빠진 나는 예의를 갖춰 최소한의 맞장구만 쳐주었다. 세상에는 오직 된장 수제비와 나, just two of us 였던 매우 흡족한 식사를 마치고 군청으로 향했다.


군청 건축과에서 두 장짜리 안내문을 받아 군청 세무서와 은행에 들러 세금을 납부했다. 납부 고지서를 들고 다시 건축과에 가면 건축 필증을 준다. 건축주와 설계자가 모두 남편으로 바뀌어 있다. 이것이 오늘의 목표였던 '건축관계자 변경신고필증'이다. 필증을 받고 기뻐하는 남편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다시 차에 탔다.


양평의 슬로건들



평일 낮이라 돌아오는 길이 막히지는 않았다. 조수석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다가, 도로 위에서 우물쭈물하는 초보 운전자에 동병상련을 느끼다가, 그렇게 급하면 어제 출발하지 싶은 과속 운전자를 욕하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편은 다시 사무실로 가고 나는 아이 하원 시간이 가까워져 서둘러 집에 갔다.


이미 바뀐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문서로 확인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다. 오늘 받은 건축 필증에는 우리의 안도감과 설렘, 걱정이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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