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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Mar 22. 2021

같은 공간, 다른 풍경에서

아침을 먹을 때면 우리집은 두 팀으로 나뉜다. 나와 남편은 식탁에 앉고, 아이는 거실 창문 가까이에 놓은 자기의 뽀로로 소파에 앉아 밖을 보며 식사한다. 일인용으로 나온 노란 뽀로로 소파는 조카가 쓰던 것을 물려받았다. 둘째 언니가 친정에 갖다 놓은 소파를 보자마자 아이는 자기 것인 줄 용케 알아챘다. 항상 자기 몸집보다 큰 가구들에 둘러 쌓여 있다가 자기 몸에 꼭 맞는 의자를 본 순간 직감적으로 안 것 같다. 부피가 커서 가져올까 말까 고민했으나 소파와 한몸이 된 아이를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 트렁크에 실려 우리집으로 온 뽀로로 소파는 집안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다 지금은 거실 창문 앞에 정착했다. 아침이면 아이는 그곳에 앉아 바깥 풍경(이라고 해봤자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는 것이지만)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조식을 먹는다(무려 두 시간을!).


처음에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자고 했다. 한식구라면 자고로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하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엄마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잠깐 식탁에 앉았다가도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자기 밥그릇을 들고 슬금슬금 창가 자리로 갔다. 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릇을 들고 왔다가 다시 뽀로로 소파로 복귀한다. 오물오물 거리는 옆모습을 보노라면 대체 무얼 저리 열심히 보는 건가 궁금해지지만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기로 한다(어차피 점심과 저녁은 같이 먹으니).


할머니와 함께 바깥 구경


한동안 풀리지 않던 설계가 중정을 들이면서 해결되었다. 중정을 가운데에 두고 디귿자로 배치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식탁은 맞은편 산을 바라보고, 안방과 아이방도 그 연장선에 두었다. 대신 거실은 도로 가까이에 두되 중정을 볼 수 있게 했다. 식탁에서는 산과 중정이, 거실에서는 중정과 부엌이, 안방과 아이방에서는 중정을 통해 거실이 드러난다. 모든 공간에서 풍경이 중첩돼서 보인다.


그동안 집은 직사각형이 되었다가 기역자가 되었다가 수없이 많은 변형을 거쳤다. 옆으로 배치했다가 뒤집어도 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옆집과의 간격, 옹벽, 집과 마당에 드는 해의 양, 건축비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전망이 좋은 앞산을 향해 집을 일직선으로 쭉 펴고 싶었다. 집의 모든 공간에서 앞산이 보이게끔 말이다.


하지만 아침 시간 창가 자리를 고집하는 아이를 보며 모두가 한곳을 바라볼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멀리 있는 산이 그리우면 부엌으로 가고, 마당이 보고 싶으면 거실에 가면 된다. 각자 좋아하는 장소와 시간이 다르니 우린 서로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만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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