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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 Mar 26. 2021

만남과 이별의 현관

아침이면 현관이 분주해진다. 지금은 출퇴근하는 사람이 남편밖에 없기에 남편이 오갈 때면 아이와 함께 현관 앞에서 배웅한다. 아이의 인사는 매일 다르다. 출근하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기도 아빠 따라 일하러 갈 거라고 우는 날도 있고, 제 아빠가 문을 나서기도 전에 빠빠이만 날린 채 휙 돌아서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는 날도 있다.


결혼 초에는 상대방을 배웅하는 것에 대해 남편과 생각이 달랐다. 나는 누가 들고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으로 가서 맞이하는데 남편은 그냥 본인이 있던 자리에서 인사하면 되지 굳이 현관까지 나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뒤부터는 나도 힘들게 왔다갔다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왔어?' 하고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배웅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남편은 내가 그리 하자 쓸쓸함을 느낀 것 같다. 얼마 안 가 현관에 나와서 배웅해주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기분이 좋다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누가 나가거나 들어오면 잽싸게 현관으로 달려가 인사를 건네기로 했고 이제는 아이까지 합세해 그 규칙을 꽤 잘 지키고 있다. 좋은 것을 경험해보면 그것을 모르던 때로 돌아가기는 힘든 법이다.


번거로워도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현관은 집과 밖을 구분 짓는 완충 지역이 되기 때문이다. 밖에서 있었던 힘든 일은 현관에서 털어내고, 집에서 걸리는 일들도 현관을 나서는 순간 가급적 잊어버리려고 한다. 더불어 짧은 외출일지라도 건강히 잘 다녀와, 별일 없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같은 의미도 있다.  




어제 아침 남편이 출근할 때 아이는 오랜만에 울었다. 전날 아빠가 늦게 퇴근해 못 보고 먼저 잠든 게 서러웠던 차에 아침에도 일찍 나가니 슬픔이 배가 된 모양이었다. 저녁이 되어 도어록을 해제하는 '삑삑' 소리에 아이는 아빠를 외치며 냅다 현관으로 뛰었다. 일찍 온 아빠가 반가워 흥겨움에 춤을 춘다. 그러다가 아침의 눈물바람이 생각났던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

(여기서 포인트는 삐죽삐죽 입술이다)

"그랬어? 아빠도 보고 싶었어."

(흐뭇)


그러자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아빠도 울었어? 나 보고 싶어서?"


기대 가득한 아이의 물음에 남편이 말꼬리를 흐린다. 우는 게 감정 표현의 최대치인 아이는 아빠도 자기가 보고 싶어서 울었나 봐, 하는 반가운 얼굴을 내비친다. 남편이 어물쩍거리는 사이 아이는 거실로 달려간다. 벙찐 표정으로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남편이 중얼거렸다.


"아니, 뭐 울 정도는 아닌데..."


오늘도 우리집 현관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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