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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암호화폐 정책 급선회한 프랑스

佛, 암호화폐 금지국에서 암호화폐 진흥국으로 전환한 배경

프랑스는 올해 초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다가 갑자기 이를 진흥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습니다.(참고: “암호화폐 강경 금지하던 프랑스가 ICO 발 벗고 나서다”) 프랑스의 변심은 전 세계의 주목거리가 됐습니다.


올 1월만 해도 프랑스는 암호화폐에 보수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지난 1월, 브루노 르 메이어(Bruno Le Maire) 프랑스 경제부장관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리스크를 검토하기 위한 TF 수장으로 반암호화폐주의자라고 알려진 전 프랑스은행장 장 피에르 란다우(Jean-Pierre Landau)를 선임하였습니다. 또 2월엔 G20 회담 주최국인 아르헨티나의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암호화폐가 전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위협을 살펴볼 것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3월부터 암호화폐에 대한 프랑스의 기류는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3월부터 르 메이어 장관이 각종 신문 사설과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는 블록체인 혁명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림 1> 인터뷰에서 암호화폐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브루노 르 메이어 경제부장관 

※ 관련영상: 브루노 르 메이어 경제부장관 인터뷰(2018. 3. 18): 이 인터뷰에서 르 메이어는 자신이 암호화폐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며, 단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변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봤습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소외된 유럽의 몸부림


우선 프랑스를 다루기에 앞서 유럽의 전반적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유럽은 인공지능·빅데이터·IoT·클라우드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중국에선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대표되는 유수한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경제패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러한 수준의 기업이 유럽에는 단 한곳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럽의 IT산업 열세는 각종 지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 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에서 유럽·오스트랄아시아·극동아시아(EAFE : Europe, Australasia, Far East) 선진국 21개국의 기업 시가총액 현황을 종합하여 산출하는 MSCI EAFE 지수에 따르면 미국·캐나다를 제외한 선진국 21개국에서 IT가 차지하는 비중(6%)은 S&P500에서의 비중(25%), MCSI 신흥시장(Emerging Markets) 지수에서의 비중(29%)에 비해 턱없이 낮습니다.


<그림 2> MSCI EAFE 지수(2018. 6. 29. 기준)


유럽이 4차 산업혁명에서 소외되었다는 문제의식은 지난 수년간 지속되어왔습니다. 구글(Google), 야후(Yahoo), 빙(Bing) 등 다양한 검색엔진 서비스를 모두 미국 기업이 제공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산 검색엔진이 없다는 것은 유럽 국가들 입장에서 항상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또한 2000년대 초반부터 마이크로소프트와 EU집행위원회(Commission of the European Communities)간 시장지배력 남용 분쟁이 시작되며, 플랫폼 산업 경쟁에서 미국 기업들에 대한 대항마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2005년 프랑스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대통령과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총리구글에 맞설 '콰에로(Quaero)'라는 검색엔진을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개발하는 데에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R&D 예산에 시달리다가 결국 별 다른 성과 없이 2013년 말에 종료되었습니다.


<그림 3> 2013년부로 종료된 프랑스-독일 합작 'Quaero 프로젝트'(www.quaero.org)


IT산업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2010년 제시하여 통과된 ‘유럽 2020 전략’에도 잘 나타나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유럽이 ICT를 활용한 혁신 산업에 집중하여 스마트 성장을 도모할 필요성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2014년에 발표한 ‘유럽 2020 전략’ 진행에 대한 중간 점검 보고서 발표에 따르면, 유럽은 여전히 미국·일본·한국 등에 한참 뒤쳐져있는 실정입니다.


<그림 4> 미국, EU, 한국 1인당 GDP 비교표(WEF, 2014)

     

<그림 5> 유럽 28개국(EU28)과 다른 국가들의 성과지표 비교(WEF, 2014)



실리콘 밸리식 R&D에 적응하지 못한 프랑스    


유럽 경제 규모 3위인 프랑스는 4차 산업혁명에서 소외된 것뿐만 아니라 저성장·고실업의 늪에 빠져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는 말까지 들어왔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지난 수년간 GDP 성장률은 0%~1.1% 사이에 머물러 있었고, 실업률은 10%대 밑으로 떨어지질 않았으며, 프랑스 기업들은 과도한 세금부담과 경직된 노동시장 등으로 국제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또한 중도우파인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전 대통령부터 중도좌파인 프랑수아 올랑드(Francois Hollande) 전 대통령까지 이러한 ‘프랑스 병(病)’을 고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ICT 혁신 격차의 원인에는 프랑스의 전반적인 경제침체도 물론 중요한 이유였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프랑스 IT 기업들이 R&D와 투자를 하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기술집약 기업들은 원자력발전, 고속열차, 전투기 개발 등 다양한 최첨단 기술집약 산업에 있어 앞서있는데, 이들은 주로 수 년에 걸쳐 특정 기술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방식에 더 익숙했습니다. 즉, 프랑스 ICT 기업들이 추구하는 혁신은 이용자 피드백을 거쳐 수시로 서비스를 개선하는 실리콘 밸리식 디지털 플랫폼 사업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마음껏 스타트업을 창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보단 자본집약적 산업에 R&D를 투자하는 관습을 이어나가면서 점점 플랫폼경제 시대에서 도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크롱, 혁신 드라이브를 걸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이 지난 해 5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마크롱은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의해 경제산업디지털부장관으로 발탁되어, 장관 재임 중 35시간 근무제 완화샹젤리제 거리처럼 국제관광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서 일요일 및 야간 영업 허용고용과 해고 절차 단순화 등 친 기업 친시장 정책을 밀어붙이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후 대통령이 되면서 이러한 개혁의 고삐를 더욱 당기는 가운데 경제지표 또한 개선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표 1> 마크롱 대선후보 당시 주요 공약(연합뉴스, 2017. 4. 24)


또한 마크롱이 당선된 이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스타트업 육성 분야에서 나타났습니다. 마크롱은 2017년 비바테크(VivaTech) 행사에서 프랑스를 '스타트업의 나라(nation of start-ups)'로 변모시키겠다고 선언한 이후 다양한 정부지원책을 제시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 지원 펀드를 100억 유로(약 127000억 원규모로 조성할 것을 약속했고, 창업가, 직원, 투자가에게 간단한 심사만 거치면 4년간 프랑스에서 일하며 체류가 가능한 프랑스 테크 비자’ 발급을 개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비자 발급시 최대 50%까지 세금 면제 혜택을 줌으로써 전 세계 스타트업들에 프랑스행을 권유하였습니다.

※ 관련기사: “프랑스에서 스타트업을 해야하는 이유”(벤처스퀘어, 2018. 7. 9.)   


<그림 6> 프랑스 내 월 별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횟수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을 혁신의 교두보로 삼다     


마크롱은 스타트업 육성과 더불어 그동안 디지털 분야에서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던 프랑스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공격적인 ICT 진흥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해 11월에는 의회 포럼에서 프랑스가 AI 분야 선두 주자에 등극할 것이란 의지를 표명하면서 AI 관련 규정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또 올해 3월엔 AI 기술 선도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국가주도 전략 필요성을 제시한 'AI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크롱은 자신의 임기가 만료되는 2022년까지 15억 유로를 AI 연구에 투자, AI 연구소 적극 유치, 정부 차원에서 빅데이터 공개, AI 규제 간소화 등을 약속하였습니다.     


블록체인 산업 육성은 이러한 스타트업, AI 산업에 대한 공격적인 육성 정책과 결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같은 대통령의 의지가 장관들의 입장 선회로도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브루노 르 메이어 경제부장관은 올해 1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리스크를 검토하기 위해 반암호화폐주의자로 알려진 전 프랑스은행장 장 피에르 란다우를 수장으로 TF를 구성했습니다. 린다우는 2014년 파이낸셜 타임즈 사설에서 비트코인을 ‘21세기의 튤립열풍’에 빗댄 가운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바가 있는 인물입니다. 이에 업계는 프랑스 정부가 암호화폐 산업 육성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평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르 메이어 장관은 2018년 3월 신문 사설을 통해 블록체인, 암호화폐, ICO를 모두 허용하는 것은 물론, 프랑스가 이 분야에서 앞장 설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로써 암호화폐나 ICO를 강력히 규제하거나 금지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켰습니다.

※ 관련기사 : “Tribune : Cryptoactifs, blockchain & ICO : comment la France veut rester à la pointe, par Bruno Le Maire” (Numerama, 2018.3.19)             


<그림 7> 르 메이어 장관 기고문 내용 발췌문

  

이러한 정책기조에 맞춰, 프랑스 정부는 ICO 활성화를 위한 규제프레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금융 시장 규제기관인 금융안전위원회(AMF)는 'PACT Act'(Action Plan for Business Growth and Transformation)를 통해 ICO에 대한 제도 마련 계획을 발표했으며, 올 가을 의회를 거쳐 2019년 초 시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지난 4월, 프랑스 의회는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세금의 경우 거의 60%를 감면하는 데에 합의하는 등 입법부와 행정부 모두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현재 프랑스 정부의 시선


최근 란다우 프랑스 암호화폐 규제 TF장이 르 메이어 경제부장관에게 올린 보고서에서도 “의심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암호화폐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하며, 이는 “암호화폐에 대한 열정이 유망한 기술의 출현과 이런 기술에 대한 펀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참고자료: Les crypto-monnaies (2018.7.4)


또한 이 보고서는 같은 맥락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대한 세 가지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직접적인 규제가 기술의 진화를 저해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섣부른 규제로 인해 실제 규제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셋째는 혁신추구행위가 규제회피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기술을 남용하는 행위자들을 규제해야 하며, 암호화폐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입니다. 



개선되고 있는 프랑스 경제지표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프랑스 정부는 기존 인터넷·플랫폼 산업에서 뒤쳐진 뼈저린 경험을 바탕으로 인공지능·블록체인·암호화폐 등 새로운 기술혁신을 수용하고 관련 시장을 육성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 정신)이란 단어는 앵글로색슨들이 훔쳐가서 쓰고 있지만 원래 프랑스어"라고 하면서 프랑스의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통령의 굳건한 의지로 변화에 회의적이었던 관료들도 이제는 새롭고 도전적인 시도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앙트러프러너십을 장려한 정부의 다양한 노력의 결과로 집권 첫해 9.4%였던 실업률은 올해 8% 안팎까지 내려갈 전망입니다. 또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연 2.2%로 전년도에 비해 두 배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지표 개선은 결국 스타트업,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새로운 산업육성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의지 표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육성전략 제시와 합리적인 법제도 정비가 우선되어 기업들이 안심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블록체인 도입 기대효과 및 예상되는 경제효과     


한편, 블록체인 산업에 대해선 현재 다양한 기관들이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IDC는 2022년 블록체인 기술로 금융업계 비용 절감 규모가 2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 가트너는 2022년까지 전 세계 블록체인 관련 비즈니스 규모가 1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은 2025년까지 글로벌 GDP의 10%가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발생하고 금융회사 거래비용 또한 30% 절감될 것이라고 전망치를 발표했습니다. 또 이러한 다양한 전망 외에도 최근 IT업계 고용시장을 보면, 구인구직 서비스인 링크드인(LinkedIn)에 블록체인 관련 채용 공고가 2016년 1,000여건에서 2017년 4,500여건으로 1년 사이에 약 4.5배 증가하는 등 관련 일자리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어 향후 일자리 창출 효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마크롱의 리더십 하에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경제가 얼마나 성장할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참고자료

1. [CCN] French, German Finance Officials Call for Global Crackdown On Cryptocurrency 

2. [MSCI EAFE] Index, June 2018

3. [The Guardian] In Search of a European Google

4. [World Economic Forum] The Europe 2020 Competitiveness Report

5. [World Economic Forum] A Frenchman in Silicon Valley

6. [한국경제매거진] 프랑스 경제, 환골탈태 비결은 

7. [벤쳐스퀘어] 프랑스에서 스타트업을 해야하는 이유

8. [Reuters] Measuring France under Macron

9. [AI for Humanity] French Strategy for Artificial Intelligence

10. [Financial Times] Beware the Mania for Bitcoin, the Tulip of the 21st Century

11. [Numerama] Tribune : Cryptoactifs, blockchain & ICO

12. [Crowdfund Insider] France to Have Bespoke ICO Regulations in Place by 2019

13. [South EU Summit] France Slashes Cryptocurrency Tax Rate

14. [French Crypto Regulatory Task Force] Les crypto-monna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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